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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탐자  (Homepage)님의 글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2005-02-06 06:28:05, 조회 : 1,645, 추천 : 248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는 내 자랑같이 들리겠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나쁜 사람이라는 평은 듣지 않는 것 같다. 간혹은 “법 없이도 살 사람”  심지어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는 말을 듣는 소위 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이다.
특히  86 년 5월부터는 술, 담배를 끊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는 성실한 가장이요 근면한 직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누구에게도 밝히기 곤란한 나의 약점을 말하려고 한다. 정말 나는 착하게 살고 싶다. 나는 그렇게 살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현재 나 자신의 근본적인 본성이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신앙 생활하기 전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나의 행동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속에 있는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얘기를 하므로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실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얘기를 하려고 결심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고백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깨달아 안 것은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한 후이며 그전에는 그것을 문제조차 삼지도 않았다.
그러면 얘기를 해 보겠다.
나는 나의 친구나 친지가 잘되는 것을 축하한다고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시기하며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아들과 친구의 아들이 똑같이 입학시험을 치른다고 할 때를 생각해 본다.  
  이런 경우 네 가지가 일어날 수 있다. 둘이 모두 합격할 경우 또 둘이 모두 불합격할 경우 둘 중 하나만 합격할 경우 , 이중에서 나에게 가장 나쁜 경우가 어느 경우인가 물론 둘다 불합격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나는 참으로 나쁜 사람이다. 나에게 가장 나쁜 경우는 내 아들은 불합격 하고 내 친구 아들은 합격하는 경우라는 생각이 난다.  
  또 가장 잘된 것은 둘 다 합격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어떤 때 나는 가장 좋은 경우는 나의 아들은 합격하고 친구 아들은 불합격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나의 이러한 마음을 가졌음을 생각할 때 나는 왜 친구 아들이 합격하는 것을 나의 아들이 합격하는 것 만큼 간절하게 원하지 않을까. 분명히 둘다 합격하는것이 나에게 절대로 손해가 되지 않는데도 나의 마음은 이렇게 삐뚫어져 있으니 너무도 한심한 일이 아닌가.
정말 이러한 내가 싫다. 이러한 것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일 것이다. .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다 . 남이 잘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남도 아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아들인데도 나는 그를 내 아들이 잘되는 만큼 바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많이 한다.  
”하나님 이 부끄러운 이 죄인  얼굴을 듣지 못하겠나이다.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교사로써 그 동안 10년이상이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품성 변화가 신앙의 핵심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수없이 얘기해온 내가 가장 기본적인 시기심 하나 바로잡지 못한 너묻 큰 죄인입니다. 주여 나의 근본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나의 시기심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할 때마다 친구들의 승진 소식이나 사업 성공 소식이 그렇게 반갑게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같은 교직에 있는 동창 중 누가 교감이 되고 누구는 교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기쁜 소식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그대로 나에게 적용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얼굴 인상만 보고 그 사람을 속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해 버리기도 하고 운전할 때 상황에 관계없이 다른 차의 운전사를 욕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것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나 혼자 아는 나 자신의 죗된 모습이다. 누가 물으면 절대로 나는 솔직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잘된 일은 내일처럼 기뻐한다고 하고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을 한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생활은 개인차가 있지만 누구나 이러한 죗된 기질을 타고 났다고 말한다.
  성경은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동만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 마음 즉 본성이 착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 속엔 착하지 못한 요소가 선천적으로 들어 있고 이 죄의 요소는 자기 힘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신앙 생활을 10년간 하면서 내 생활에 이 죗된 요소가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 있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기심과 시기심 탐욕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런 상태로 내가 하늘나라를 간다면 나에게 하늘나라가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만  잘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 잘되는 것이 그렇게 반갑지 않을 테니 그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생활이 연속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기심과 시기심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진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있다. 그래서 참선을 하고 고행을 하며 이것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얼마 전에 수도승 하나가 “지금 내가 가진 육체로는 성불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죽어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서 부처가 되겠다.” 라는 유서를 써 놓고 산에 올라가 몸에 석유를 뿌리고 자살 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현재 죗된 본성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자기의 노력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욕심을 안 가지려고 노력 할수록 욕심은 더 커진다. 참선을하고 고행을하고 선행을 하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비워지고 욕심을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상황을 만나면 그것은 맥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목숨보다도 신앙을 중요시한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 하는 말을 하면서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한탄만 하고 있지 않다,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나는 그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내 생활은 2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는 내가 예수님과 연결이 되었을 때와 나 나름대로의 생활을 할 때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말씀을 명상하고 감사하는 순간의 나는 시기나 미움의 마음이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나의 죗된  모습을 생각할 때 나는 실망한다. 추악한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의 눈을 돌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본다. 그 때 예수의 음성이 들린다.
  “너의 죄를 내가 용서한다.” 나는 내가 용서 받았음을 믿는 순간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들고 그 순간은 나의 죗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죄가 커 보일 수록 용서는 더욱 커진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 ”내죄가 용서 받았음을 느낄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그 순간 나는 경험한다. 내가 시기하고 미워하는 욕심을 가진 죄의 모습이 내 속에서 사라진다. 나는 시기하던 그 사람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할 때 시기가 없어지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 내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땐 내 죗된 속성은 사라진다. 그러나 나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세상 욕심에 이끌려 갈 땐 죗된 속성은 다시 살아난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나는 그런 경험을 한다. 몇 번씩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다시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학생을 볼 때 그 아이에 대한 미움과 배신감이 마음에서 올라오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매를 칠 때가 종종 있다.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의 매를 때린다고 하면서 사실은 화풀이 매를 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는 그런 순간에 잠깐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는 때가 있다.
  “지금 나의 마음의 상태를 아시는 주님 이런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런 기도를 할 때마다 주님의 응답은 언제나 한결 같다. “십자가의 나를 바라 보라” 이다,  가시관을 쓴 피가 내리는 얼굴 나를 향하여 불쌍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분의 눈동자를 통해 내가 미워하는 그 아이를 향해서 자비와 동정을 보이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때마다 참으로 묘한 경험을 한다. 갑자기 그 아이의 모습이 예뻐지는 것이다. 그러면 내 속에 있던 그 아이에 대한 나쁜 감정들이 눈 녹듯이 없어진다. 그 아이가 사랑스러워지기 까지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어 마음에 기쁨이 용솟음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나는 신앙생활에서 언제나 그러지는 않지만  수시로 이런 경험이 바로  내가  얻는 가장 소중한 소득이요 어느 것과 비길 수 없는 값진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나는 지극히 악한 죄인이지만 내가 예수님을 의지하는 그 순간만은  너무도 선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이런 종류의 글을 부끄러움 없이 쓰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용서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불쌍하게 여기시며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
  나는 수업 시간에 말썽을 피우는 그 학생을 미워 하지만 예수님은 그 학생을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시며 그를 위하여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시는 분이다. 그 생각을 하면 나 역시 그를 미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 내 마음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 아이가 예뻐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시간만은 나는 악인이 아니라 착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준 사랑을 소유한다면 원수 까지도 사랑하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죗된 본성에서 벗어나는 비결을  발견한 것이다.
그 방범을 내가 발견했다고 해서 내가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죄인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이 순간도 읽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런 원리를 알면서도 나의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여 부부 싸움을 하고 말았다. 아내와 나의 아들은 아마 실망 했을 것이다.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하나도 변화되지 않았다.고,......
그렇다 나는 현재도 변화 된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때는 나의 자존심을 세우고 나를 죗된 속성을 합리화 시키느라고 예수님과는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한 실수라고...........
만약에 내가 그 순간 나를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기도를 하고 말씀을 생각하였다면 아내의 입장이 이해가 가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문제는 나의 마음이 예수님과 연결되지 않아서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요한 복음 15장 5절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로다.”  
  여기에서 과실을 맺는다는 것은 성품의 변화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착해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착하게 변화를 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이 바로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가지인 우리가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지는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부터 수분과 영양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즉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맺히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연결된 우리가 되면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으로부터 분리되면 우리는 죄인이요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과 떨어져서 의인이 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내 생활에 모든 분야에 적용 시키는 생활을 하는 자는 열매 즉 품성의 변화를 받아 하늘 사람으로의 특권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고 찬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순간들을 계속하고 싶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나를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인간의 방법으로 돌아가려는 나 자신과의 투쟁이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죄와의 투쟁이란 하나님과 동행을 방해하려는 내속에 들어있는 속성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물론 내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있지 않는 것도 우리가 주님과 연결되어 사는데 큰 방해 거리가 된다.
그러나 이제 이 원리를 우선 인정하고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기도 한번 해보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험을 하는 순간 우리는 의인이 되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때의 기쁨은 그야말로 하늘을 가는 기분이 될 것이다.
  “주여! 당신은 포도나무요 나는 당신의 가지입니다. 내 생명은 당신과 연결될 때에만 유지가 가능 합니다. 당신과 단절되면 나의 죗된 속성은 나를 사망의 길로 이끕니다. 주여! 내가 당신에게 매달려 있게 하옵소서 !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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