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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선교회  님의 글입니다.
성경과 예수님의 눈물 2012-11-07 16:10:05, 조회 : 3,670, 추천 : 189


이 글의 취지
이글을 게재하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우리 기독교인들과 나누고자하는  필자의 신앙고백록이고, 그 둘은 모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모 반기독교(antichrist)인의 도전의 글에 대한 필자의 “성경에 의한 변증”이다.(참고: 다음 본문의 부록)

제목:   성경과 예수님의 눈물의 진실

텍스트(text, 성경의 원구들)의 안내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웃었다는 기록은 한 번도 없지만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다는 기록은 세 곳에 있다. 그 하나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 직후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며 우셨고(눅19:41), 그 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았다고 하였다.(눅22:44)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고 성경에 기록한 것이 이 때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히5:7)  그 세 번째는 일찍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죽어 장사되었을 때 그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요11:35)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의 눈물의 기도와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요11:43-44)

1. 파멸될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신 예수님(눅19-41)

(1)성경의 기록
예수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셨다. 모인 제자들과 무리는 호산나(마21:9)를 외치며 환호 했지만, 성에 가까이 오시자 예수께서는 분봉왕 헤롯에 의하여 46년간이나 건축되어 왔던 웅장하고 화려한 그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19:41)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19:28-44)
이 예수님의 눈물은 곧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구약시대의 남유다가 멸망할 때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통의 눈물은 곧 하나님의 눈물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엔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Immanuel)신 예수님에 의하여 우셨다.
(2)예루살렘 입성 때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의 묵시(黙示)
이때의 예수님의 눈물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1000여년의 온 역사의 종말에 대한  통분과 조곡의 눈물이며, 곧 이루어질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AD 70 년경)에 대한 묵시(黙示)의 눈물이었다.
(3)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
이 말씀은 그 후 AD 70년경 4년간의 로마와의 유대전쟁에서 성취되었다. 이때 예루살렘은 도성 전체가 완전히 로마(티투스, Titus)에게 점령되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되고[단 성전의 토대의 일부인 통곡의 벽(The Western Wall, The Wailing Wall, 450미터)만 남아 현재 관광 코스가 되고 있다.]. 이 때 성전 기물들은 로마로 모두 가져갔다. 이때 지중해 부근의 마사다 성채에서 끝까지 3년간이나 저항하던 유대인들은 부녀자와 어리 아이까지 포함해서 960명이 모두 자결함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이 마사다의 비극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명예와 애국심의 고향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 이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국방부 장병들의 최종훈련 코스의 수료식장(임관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수료식(임관식)에서 모두 “마사다의 비극은 다시 없다!(Masada Never Again!)”라고 합창다고 한다.(참고: 조병호 박사의 신약중간사, 필자의 성지일기 등)

2.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통곡과 눈물의 간구(히 5:7, 눅22:44)

인류의 메시야(Messiah)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한  슬픔과 고통의 인생(A special life of sorrows and griefs)을 사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Incarnation, Immanuel)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동시에 우리 죄인의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갖은 고난(suffering)을 겪으신 슬픔과 비통의 삶을 사신 고통의 화신이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의 독생자에게 어떤 죄인의 인생보다 우대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큰 고난의 인생을 주셨다(히 5:7-10). 왜냐하면, 모든 인생(죄인)의 질고와 슬픔을 지우기 위해서였다.(사53:3-5)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며 또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긍휼)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은 그  분의 체휼(體恤,히4:15)로 애통의 눈물을 흘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히 5:7-10, 빌2:5-8)

(1)성경의 기록
구약성경(예언의 말씀)
(i)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en, a man of sorrows, and familiar with suffering. Like one from whom men hide their face she was despised, and we esteemed him not.(NIV)
(ii)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He was oppressed and afflicted, yet he did not open his mouth; he was led like a lamb to the slaughter, and as a sheep before her shearers is silent, so he did not open his mouth.(NIV)
(iii)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Surely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considered him stricken by God, smitten by him, and afflicted.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NIV)

(2) 육체로 오신 하나님(예수님)에 의하여  성취된 말씀(신약성경)
(i)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NIV)
(ii)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 5:7-10)
During the days of Jesus' life on earth, he offered up prayers and petitions with loud cries and tears to the one who could save him from death, and he was heard because of his reverent submission. Although he was a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what he suffered and, once made perfect, he became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for all who obey him and was designated by God to be high priest in the order of Melchizedek.(NIV)
(iii)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5-8)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NIV)

(3) 예수님의 눈물은 죄인의 구원과 생명의 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체로 오신 것은 우리 인류의 중보자(대속자, 딤전 2:5)로 오셨다. 그리고 이 위대한 최종사역(대제사장과 대속자로서의 십자가의 죽음)은 유월절 전야(최후의 만찬 후)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통곡과  눈물과 피 땀(눅22:44)의 기도(간구)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의 이 통곡의 기도와 눈물(마26:37-38, 눅22:44)은 우리의 구원과 생명의 샘(fountain)이 되었다. (히 5:7-10) 그리고 이 하늘의 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영원한(영원히 마르지 않는) 보혈의 우물이 되어 오늘도 만인의 죄를 씻어주고 영생의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고 있다. 할렐루야!(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도 영원하다. 그러므로 지금도 믿는 자에게는 보혈의 능력은 계속 역사하고 있다.)

3. 베다니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과 부활의 능력
(1) 나사로의 무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요11:35)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마르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함께 우셨다(요11:33,35)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라(Lazarus, come out!)”라고 큰소리로 부르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흘 만에 살아났다.(요11:43-44)
예수님은 왜 눈물을 흘리셨는가? 그 눈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Incarnation, Son of Man, Immanuel)이신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의 죄로 오는 고통과 죽음에 대하여  흘리신 연민(憐愍)과 사랑의 눈물이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 그의 자매들인 마르다, 마리아와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요11:33, 35, 롬12:15)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죄 없는 인간 예수님(the man Christ Jesus, 딤전 2:5)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體恤)(주1)하시고, 또 모든 일에 한결 같이 시험(고난)을 받으셨던 분이기 때문이다.(히4:15)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성경에 나타난 기록의 숫자(몇 번) 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요21:25)

주1. 체휼(體恤, looking after or sympathize with)의 뜻
윗사람이 아랫 사람의 곤란한 사정을 돌보고 구해 주는 일.(또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슬픔을 같이 하는  일)

관련된 성경 말씀:
(i(i)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3-35)
When Jesus therefore saw her weeping, and the Jews also weeping which came with her, he groaned in the spirit, and was troubled,
And said, Where have ye laid him? They said unto him, Lord, come and see. Jesus wept.(KJV)
(ii)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體恤)(주1)하지 아니하는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was without sin.(NIV)
(iii)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Rejoice with them that do rejoice, and weep with them that weep.(KJV)
(iv)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NIV)

(2)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능력
나사로의 죽음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시던 예수께서 하나님께 기도 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라(Lazarus, come out!)"라고 큰소리로 부르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났다.(요11:43-44) 어떻게 죽어 흙이 되어가던(썩어 냄새나던) 나사로가 살아 낳는가? 그것은  살아 날 성경의 근거가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창1:1)  하나님의 말씀(God' command,창1:3, 히11:3)으로 지으셨고, 특히 사람은 흙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1:26, 2:7)
그 둘은 하나님께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예수 그리스도의 도의 부활을 예언함)하시기 때문에(시16:10) 예수님 자신도 그 후에 갈보리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그리고 말씀(성자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도(요1:14) 그 본체가 창조주이므로  나사로를 다시 살릴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그 셋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기(the breath of life, 창2:7)이다. 즉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spirit)이요 생명(life)”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6:63)
그래서 “나사로야 나오라(Lazarus, come out!)”라는 명령(말씀)에 나사로가 살아 난 것은,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한 바로 그 하나님과 동일(동질, Identification)한 분이며,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God-Man)이심을 확신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personality)으로서 인간들과 함께 울었고 그의 신성(the Divinity,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사로를 살리셨다.

성경근거: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KJV)


★위의 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기독교신자(christian)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는 비그리스도인(nonchristian)들, 그리고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반그리스도인(antichrist, 反基督敎人,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드리는 본문 필자의 신앙고백록이다. 특히 본문의 부록으로 첨부한 한 반그리스도인(antichrist, '이드’씨)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Identification)에 대한 부정적 도전(negative challenge)에 대답하는 간략한 변증이다. 결코 논쟁이 아님을 밝힌다.


부록(appendix)
다음 글(부록(appendix)은 반기독교인(antichrist, 반기독교인(反基督敎人: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 인 “이드”씨가  2007년 ”예수평전(종교와 비평)에 게재한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옮긴 원문이다. 이 반기독교인의 글(아래의 부록)에 대하여 위 본문의 필자가 성경에 의거하여  “예수님의 눈물을 위한 변증”을 언급했다.
  
[이드님 약력]
*현 종교법인법 제정추진 시민연대 사무처장 (http://www.rnlaw.co.kr)
* 저서 '예수평전' (펴낸곳: 종교와 비평, 2007)

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  

글쓴이 : 이드  (211..104.135) 날짜 : 2005-02-12 (토) 22:18 조회 : 785    
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
***필자는 전작 [눈물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와 악어의 눈물]란 글에서 예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묘사된 곳이 요한복음 11장 뿐이라고 쓴 바 있는 데 바이블을 검색하다 보니 누가복음에도 기록된 장면을 발견하였기에 상기 글을 다시 개작하여 아래와 같이 올리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는 슬픔을 알 때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아픔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린다.
*분했을 때도 서러워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추워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웃어도 눈물이 나온다.
*하품을 할 때도 눈물을 흘리겠고
*기쁨을 만났을 때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 기아에 허덕일 때도 당연히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눈물과 웃음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또하나의 증거가 아닌가 한다.
바이블엔 이상하게도 이러한 자연스런 감정의 표출인 눈물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
구약의 주인공들인 노아,아브라함,모세,다윗,솔로몬...등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인간들로 묘사되어 있는 데 그러면 소위 사랑의 표상으로 선전되고 있는,신약의 주인공인 예수는 어떠할까?
예수의 일생을 기록했다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두번 나온다.
우선 요한복음에 묘사된 장면을 같이 감상하기로 하자.

1)예수와 나사로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 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요한 11:35)>>
예수는 일생을 통하여 그의 가족들...의붓 애비 요셉,모친 마리아 그외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소위 12사도로 불리는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린 바 없다.
물론 그를 따르던 여인들을 위해서도 눈물 한방울 비치지 않았었다.

이렇게 눈물에 인색했던 예수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나사로가 상기에 서술된 뭍 사람들 보다 좀더 다른 의미의 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었을까?
해답은 우선 그대의 상상력에 맡기기로 하자.
필자의 감상이 궁금하다고?
나사로를 위해 흘린 예수의 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하는 게 필자의 솔직한 느낌임을 밝혀 두고져한다.
그러면 예수가 눈물을 흘리전 전의 장면,
소위 나자로의 부활로 회자되고 있는 그 장면을 다시 살펴 보기로 하자.
예수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오빠인 라자로를 평소에 사랑했다 한다.(11:5)
*마리아 자매가 라자로의 발병을 예수에게 고한다.(11:3)
*예수는 그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안심을 시킨다.(11:4)
*3절에서 나사로는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해놓곤 갑자기 나사로는 죽었다고 말을 바꾼다.(11:11.14)
*나자로를 부활시키겠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11:11)
*나자로는 무덤에 묻힌지 이미 나흘이 지났다 한다.(11:17)
*마르타는 오빠를 구해주지 않았다고 원망의 말을 한다.(11:21)
*예수는 나자로가 곧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11:23)
*마르타는 마지막 날의 부활을 믿으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신앙 고백 한다.(11:24~27)
*마리아는 예수가 있었다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거라고 원망과 안타까움을 표한다.(11:32)
*예수는 마리아와 이웃 유대인이 눈물을 흘리자 같이 운다.(11:35)

자 여기 까지다.
왜 예수가 눈물을 흘렸을까?
첫번째 추측:
만약 나자로의 죽음이 애통해 울었다면 얼마 전 그의 부활을 공언했으며 조금 있다가 실제로 나자로를 살려내는 기적과 배치된다 .즉 예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두번째 추측:
마리아 자매와 유대인의 믿음 부족이 안타까와서? 그러나 이것도 말이 안된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에게 왜 이적을 행하나?
세번째 추측:
마리아가 울고 이웃들이 우니 덩달아서 운다? 역시 말도 안된다. 예수 입장으로서 울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울고 있는 군중들을 비웃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역시 악어의 눈물 밖에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입안에 수분을 보충,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여 악어의 눈물이 거짓 눈물을 의미하게 됐다고 한다.]

예수가 나자로의 병을 즉시 고쳐 주지 않고 죽고 난뒤 살린 것은 그의 목적 즉 자신의 능력을 좀더 극대화시키고 신도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자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예수의 의도에 잘 따라 주는 주위 모든 조연들의 역활을 보니 얼마나 흐뭇했겠는가?
그렇다. 예수는 악어의 눈물을 흘렸던게다.
다른 장면으로 넘어 가기로 하겠다.

2)예수와 예루살렘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누가 19:41) >>

복음서에 특히 공관복음에 기록된 예수는 神과 人間의 경계를 넘나드는 반신반인적 존재로 묘사됨과 동시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철저한 유대인으로 그려져 있다.
상기 장면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예언자로서의 예수와 그 종말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유대인으로서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장면 역시 우리는 냉철하게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예수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누가편집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데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이제 네 원수들이 돌아 가며 진을 쳐서 너를 에워 싸고 사방에서 쳐들어 와 너를 쳐부수고 너의 성안에 사는 백성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안에 있는 돌은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누가 19:42~44) >>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 첫번째로:누가복음 편집자의 작위성에 대해
주지하는 바 상기 내용은 제1,2차 유대 전쟁을 예언한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제1차 전쟁이 A.C.E. 66-70 그리고 제2차 유대전쟁이 A.C.E.131-134 동안에 발발했으므로 누가복음은 적어도 예수의 사후 30여년 후에 편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러한 역사 비평을 인정한다면 예수를 예언자로 묘사한 누가편집자는 철저한 위선자 내지 음모자로 밖에 평가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두번째 견해로 정말 예수가 예언자였다고 인정해 줄 경우를 가정해 보기로 하자.
30년 혹은 100년 후에 발생할 역사적 사실을 예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참이라면 예수는 정말 神 혹은 神的인 존재라고 평가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이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예루살렘 시민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평화의 길을 몰랐으며 야훼가 구원하러 올 때를 몰랐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예루살렘을 멸망했어야할까?
그리고 그 멸망을 왜? 이교도인 로마의 힘을 빌려야했을까?
게다가 유대 전쟁 당시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 역시 왜? 죽어야만 했을까?
예수가 진실로 인류를 사랑하는 神이었다면
미래의 참상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 전에 그러한 참상이 발생하기 전에 신적인 권능을 발휘해서라도 미연에 그 전쟁을 방비했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으며 그외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다는 상기 내용은 당연히 무효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예수의 구속사적인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한다면 예수가 이때 흘린 눈물 역시 "악어의 눈물"로 치부될 수 밖에 없겠다.
그러하다. 예수는 가족과 지인을 위해 평생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인류를 위해 진실된 눈물 한방울 비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조국 이스라엘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도 그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 했다.

그러나 기독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한다.
눈물을 모르자에게 눈물을 바치는 그대여
그대의 눈물은 오해이며
예수 그리고 목사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임을 하루라도 빨리 알게 되시길 바라노라.

첨언:사실 바이블은 상상력이 부족했던 그리고 치밀하게 글을 쓰는 구성력이 모자란 고대인의 신앙 고백록 정도로 인정해 버리면 모든 의문은 당연히 풀리는 바,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05-02-13 10:16:28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출처] 반기련 - http://www.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son&wr_id=667 rw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 (요약)
(1)예수님과 반신반인(半神半人) 문제
기독교 경전인 성경(the Holy Bible)에 의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편재,偏在)하신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罪}로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동정녀(마리아)에 의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성육신하신 하나님, Immanuel) 그리고 그는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또 죄 없는 온전한 사람이시다. 그러므로 반신반인(半神半人)이 아니다. 100% 하나님이시며 100% 인간이시다.
(2) 하나님의 역사의 경륜(dispensation)
질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여 역사의 타임 스케줄(time schedule, historical drama))에 의한 경륜(經綸, 엡1:9-10)에 따라 유년시절, 공생애와 십자가의 죽음 등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의 길을 마련하여 놓았습니다.
(3)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the book of God's inspiration)
그리고 기독교의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진리의 영)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영적 진리(spiritual truth)이므로 일반 철학, 윤리학이나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이해를 초월하는 차원이 많다.(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the Spirit of truth. The world cannot accept him, because it neither sees him nor knows him. But you know him, for he liveswith you and will be in you.NIV)

(4) 우주(피조물)의 근원에 관한 믿음(Faith)
기독교는 우주가 진화론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는 종교이다.(요1:1-5)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NIV)

(5)‘이드’(반그이리스도인, antichrist)씨의 “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의 글에 대한 당혹감(當惑感)

 '이드’ 씨의 글 중 꼭 변증할 발췌(拔萃) 부분
(‘이드’씨의 글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영적 차원의 지식이 결여된 글이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변증이나 반론을 하기에 난처하다. 그래서 그 부분에 관하여는 위의 필자의 본문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대체로(대강의 요점만을) 서술했다. 여기서는 이성적(논리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의 글에 대한 부분만을 필자의 의견을 게재한다.)

‘이드’씨의 글의 발췌문

1.첫 번째 부분
우리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는 슬픔을 알 때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아픔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린다.
*분했을 때도 서러워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추워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웃어도 눈물이 나온다.
*하품을 할 때도 눈물을 흘리겠고
*기쁨을 만났을 때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 기아에 허덕일 때도 당연히 눈물을 흘린다.

2.두 번째 부분
[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입안에 수분을 보충,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여 악어의 눈물이 거짓 눈물을 의미하게 됐다고 한다.]

3.세 번째 부분
예수가 나자로의 병을 즉시 고쳐 주지 않고 죽고 난 뒤 살린 것은 그의 목적 즉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극대화시키고 신도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자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필자(그리스도인)의 의견
 1. 첫 번째 부분에 대하여.
‘이드’ 씨는 위에서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8가지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경우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 외에 또 사람은 남을 해하거나 속이기 위하여 위선[외식(外飾)]으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드’씨는 무엄하게도 예수님의 눈물을 이 외식(위선)의 눈물로 매도(罵倒)하고 있다. 참으로 신성 모독의 망언이다.

2. 두 번째 부분에 대하여.
그런데 파충류 동물인 악어의 눈물은 악어가 먹이를 먹을 때 악어의 입안에 수분을 보충하기 위한 생리작용에서 나오는 눈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어의 눈물과 인간의 눈물은 유출의 원인이 전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이드''씨는 또 다음같이 자가당착의 말을 하고 있다
.
“언뜻 보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여 악어의 눈물이 거짓 눈물을 의미하게 됐다고 한다.”

이성도 영혼도 없는 파충류동물인 악어가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하게 보이기 위하여 거짓 눈물을 흘린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악어의 눈물은 거짓눈물이 아니라 악어가 먹이를 잡아먹을 때 자연적으로 분비(分泌)되는 체액(體液)일뿐이다.

3. 셋째 부분에 대하여.
‘이드’씨의 글.
예수가 나자로의 병을 즉시 고쳐 주지 않고 죽고 난 뒤 살린 것은 그의 목적 즉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극대화시키고 신도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자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위의 '이드'씨의 문장을 분석하면, 첫째로 예수님께서 병들어 죽은 '나사로를 살린 목적' 이라는 표현에서 '이드'씨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성경을 인정한다는 고백이고, 또 '신도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자는 의도'에 대한 표현도 틀리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참고: 요12:9-11)
둘째로 '이드'씨가 '예수께서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극대화 시키려고 나사로의 병을 즉시 고쳐 주지 않고 죽고 난 뒤 살리셨다'고 말한 것은, 예수께서 친히 다음같이 대답하셨다.(요11:4,11:17-45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11:4,17-45)
  
그러므로 '이드'씨의 위 3번의 예시 문장 중에 '즉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극대화시키고'의 표현을 '하나님의 영광를 위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성경의 말씀을 대입하면 옳을 것이다.(요11:4)

끝으로(finally)  반그리스도인인 ‘이드’씨의  글에 대한 필자의 변증의 요약과 함께 당혹감을 말하고자한다.  
사람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은 논리학상 비유가 될 수 없다. 악어의 눈물은 영혼과 이성(또는 윤리관)이 없는 파충류동물의 먹이를 위하여  생리작용으로 나오는 눈물이므로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눈물과 비유될 수 없다. 그래서 선악의 가치를 갖지 않는 자연적인 악어의 눈물을 예수님의 죽은 나사로에 대한 연민(憐愍)의 눈물과 동일시하게 되는 모순을 나타냈다. 즉 예수님이 하급동물인 악어의 먹이를 먹기 위한 눈물을 비유하여 위선의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보다 차라리 만물의 영장인 사람(애통하는 사람)을 속이기 위하여 위선(외식)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논리적인 주장이 아닌가. 그래서 반기독교인인 이드씨의 글은 한 마디로 논리의 비약이상의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궤변(詭辯)이 된다. 그리고 ‘이드’씨의 다음 글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더욱 당혹(當惑)케 한다.

‘이드’씨의 말
예수 그리고 목사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임을 하루라도 빨리 알게 되시길 바라노라. 

위 말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우리의 구주(savior)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분별력이 없어서 기독교에 속아서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폄훼(貶毁) 하고 희롱(戱弄)하는 실언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관련 성경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
The fool says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They are corrupt, their deeds are vile;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NIV)

(6)마귀의 궤계(간계)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생명과 빛으로 오셨으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고(요1:4-5), 영접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요1:11) 그 이유는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어둠의 왕인 마귀가 예수님의 빛을 갖은 간계(궤계, wiles, schemes)로 훼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같이 말하고 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 )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로 무장하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wiles).(NIV)

(7)  예수님의 눈물 과 반그리스도인 (antichrist, 反基督敎人)
(위의 반그리스도인(antichrist,反基督敎人)은 악령인 마귀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사람을 말함)

장차 파멸될 예루살렘 성을 보며 우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신 예수님의 눈물,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흘린 예수님의 눈물은 오늘 날도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의 눈물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오늘 날 수많은 진실한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비신자들과 또 예수님을 반대하는 반그리스도인(antichrist, 反基督敎人)들과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선교하기 위하여 흘리는 순교의 피와  기도의 눈물은 바로 예수님의 눈물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반대하는 반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이 없는 ‘죽은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눈물은 지금도 반그리스도인(antichrist,反基督敎人)들도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까지 눈물로 기다리고 계신다.(참고:탕자의 비유 에 나오는 아버지, 눅15:11-32) 그래서 오늘 날의 반그리스도인도 때가 이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신자(beleiver)와 증인이 될 영혼이 많다고 믿는다.
한 때 살기등등한 반그리스도인(antichrist,反基督敎人)이었던 바울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사 그를 예수님의 위대한 사도로 세우셨다. 그러면 어디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가?  그곳은 성경안에서다. 성경 안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만날 수 있고, 영생의 낙원(paradise, 눅23:43)인 천국(the kingdom of God)을 차지할 수 있다. (마11:12) 할렐루야! 아멘.
성경의 참고절
하나님이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KJV)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He was delivered over to death for our sins and was raised to life for our justification.(NIV)

예수께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회개한 한 행악자에게)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
Jesus answered him,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NIV)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K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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