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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필  님의 글입니다.
역사의 강길 요단계곡(1996년 8월 9일) 2004-05-11 13:02:58, 조회 : 5,862, 추천 : 490

3부◈

[이스라엘과 시내산 순례의 길]

9.역사의 강길 요단계곡1996년 8월 9일)

1)요단강의 물길

8월 9일 오전 11:00경 우리일행을 실은 버스는 답가(Tabgha)를 출발하여,아라바 (Arabah) 라고 불리었던 요단계곡을 따라 남으로 흐르는 요단 강 서편의도로를 달렸다.요단강(Jordan)은 '급한 여울'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 요단 강은 파레스타인 (일명 가나안) 동부의 자연적 국경선으로서 이 강의 발원(發源)은 세갈래이다. 가운데 줄기는 수리아의 심스산이고 좌우에 있는 두 줄기는 헬몬산 이다. 메론호에서 합류하여 갈리리 바다를 넘쳐서 사해(Dead Sea)로 들어 간다.갈릴리 바다에서 사해까지는 대략 125km이나 요단 강은 굴곡이 심하고 급한 여울이 많아 (27개) 그 물길은 387km나 되고 강 폭은 평균 30m 정도라고 한다.창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 요단 들은 물이 넉넉하여 소돔 까지 그 땅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다고 했다.(창13:10)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 정부가 갈릴리 호수의 수자원을 농. 공업과 생활용수의 공급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호수의하구(河口)를 제방으로 막고,그물을 이스라엘 전 국토에 모세혈관처럼 배수(配水)의 수도관을 시설하여 수량관리(水量管理)를 하고 있어서 사해로 흐르는 유수량(流水量)은 원래 보다 많이 감소 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지금은 건기(乾期)인지라,강 폭은 좁고, 수심은 얕고,강변도 황량해 보였다. 아마 옛날 구약시대엔 오늘날보다 물길도 넓고 강기슭의 숲들도 더욱 울창하게 욱어진 푸른 원시의 자연풍경이었으리라.......지금은 성서의 기록과 많은 사연을 전하는 조용한 역사의 강으로 흐르고 있었다.

_해설

①요단 강의 역사 : 요단 강은 일찍이 야곱이 들에서 돌아온 배곺은 형에서로 부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늙어 눈이 먼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에서가 받을 축복을 빼았은 탓으로 형의 분노를 사서, 지팡이만 가지고 건넜던 피난의 강이었고 (창32:10)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이 강을 육지 같이 건넜고(수3:16~17),선지자 엘리야가 겉옷으로 물을 가르고 엘리사와 함께 이 강을 건넜다.(왕하2:6~8) 그리고 아람(Aram)의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명대로 이 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고 문둥병을 고쳤고 (왕하5:14), 또 엘리사가 이 강에 빠진 초부의 도끼를 떠오르게 했고(왕하6:46), 세례 요한이 이 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으며(마3:5~6), 예수님은 이 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마3:13~17) 이 요단 강은 전체적으로 구약 성서에서 181번,신약성서에서 15번이나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이 요단 강이야말로 성서에 있어서 가장 풍성한 구속사적의미를 전하고 있는 성강(聖江,Holy River)이라 할 수 있다.

②아라바(Arabah)는 갈릴리 바다에서 '사해'를 지나 홍해 동북의 아카바만에 이르는 함몰지대로서 세계에서 가장낮은 계곡이다.요단 강은 이 계곡을 흘러내려 해발-390m의 사해에 이른다.

2)사울왕의 치욕 벧산성벽

답가를 떠난 우리일행은 갈릴리 바다를 지나 요단 강 서안 길을 따라 남으로 한참 달려 벧산(Bethshan)앞을 지났다. 벧산은 그 지명(삼상31:10)과 함께 사울왕의 비극을 전하고 있는 곳이다 벧산은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Saul,BC1050~1010,재위기간)이 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 삼 형제와 함께 길보아산(Gilboa,520m)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가 아들들이 모두 죽고 패전하자 자기 칼 위에 엎드려 자살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사울의 목을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 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 갑옷은 아스다롯(Ashfaroth)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성벽(수17:11,옛 므낫세지파 땅)에 못박았다(삼상31:10), 이때 요단 강 동편에 있는 길르앗(Gilead) 야베스(Jabez) 거민들의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eshel tamarisk)아래에 장사 지내고 7일을 금식했다(삼상31:1~13)

[고대 벧산의 한유적지]

_해설

①아스다롯(Ashtaroth)은 가나안들이 숭배하는 남신 바알(Baal)의 배우 여신이라 한다.(삼상7:3,12:10,렘7:18,삿2:13,10:6 참고)

②에셀나무(eshel tamarisk)는 요단 골짜기에 많이 자라는 떨기나무의 일종이다. (창 21:33, 삼상22:6, 31:13) 봄에 아름다운 가지에 꽃을 피운다.거룩한 나무라 하여 성소, 분묘, 회의소 같은 곳에 심었다고 한다.

③야베스 거민의 보은

사울왕의 파멸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한 죄(삼상13:8-14,15:3-23,22:9-19 등 참고) 때문이었고, 야베스인들의 사울에 대한 사후예우(死後禮遇)는,사울이 한때 야베스인들을 위하여 암몬인을 공격하여 주었으므로 (삼상11:1~11)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였다.(삼상31:11~13, 삼하2:4~5, 21:12, 대상10:11) 후일 다윗은 이들 야베스인들을 축복하여 주었다.(삼하2:5~7)

3)길르앗 라못의 비극(패전)

벧산 앞 요단 강 동편은 옛 길르앗이다. 그 곳의 길르앗 라못은 악명 높은 이세벨(Jezebel)의 남편인 아합왕(Ahab,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왕 BC874-853)과 여호사밧왕(Jehosaphat,유대4대왕 BC 870~845)의 연합군이 당시 두 왕국의 숙적이었던 아람(수리아)을 치기 위하여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거부하고 거짓선지자 시드기야(Zedekiah)의 말을 듣고 올라가 아람왕 벧하닷 2세 (BenhadadⅡ, BC871~844년 재위)와 싸우다 아합왕이 죽은 땅이다.(BC853,왕상22:1~28) 당시의 아합의 최후를 기록한 성경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아합왕이 여호사밧왕에게 말했다. "나는 변장하고 군중속에 들어 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그리고 아합은 군중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감추었다. 그 때 아람왕은 32명의 전차부대(Chariots)지휘관들에게 오직 아합왕을 집중적 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이들이 왕복을 입은 유다왕 여호사밧을 아합왕인줄 알고 공격 하려 했으나, 여호사밧이 큰 소리를 치며 도망하므로 아람 지휘관들이 평소 아합왕의 얼굴을 알고 있던터라 곧 추격을 멈추었다.그런데 우연히 아람군의 한 군사가 쏜 화살이 변장한 아합왕의 갑옷 솔기를 맞추었다. 이때 부상을 입은 아합왕은 자기의 전차를 모는 운전병에게 속히 그 전투현장에서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날의 전쟁이 맹열하고 전차들이 뒤엉키고 밀착되어 빠져 나갈 수 없어 종일 아람 군사들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다. 이때 상처의 피가 흘러 전차(병거)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왕상22:29~35)

-해설

아합과 이세벨: 아합왕은 오므리(Omri, BC885~874, 이스라엘 6대왕)의 아들이고, 이세벨(Jezebel)은 시돈왕 엣바알(Ethbaal)의 딸로 아합왕의 아내이다.(왕상16:31) 아합왕과 이세벨은 이스라엘로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아세라 등의 이방 신을 숭배하게 함으로서 하나님 앞에 큰 악을 쌓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가장 패악한 왕과 왕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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