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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필  님의 글입니다.
기독교 선교의 고향 가버나움(Capernaum) 2004-05-11 12:56:48, 조회 : 5,923, 추천 : 412

3) 기독교 선교의 고향 가버나움(Capernaum)

(1) 세계 선교의 길목 가버나움

우리는 막달라를 지나 오전 09시경 옛 가버나움 회당자리에 도착했다. 가버나움(Kfar Nahum, 히브리어로 나훔의 마을)은 북쪽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요단강의 갈릴리 바다 유입구(流入口)인 벳새다(Bethseida)에서 남서쪽 5㎞ 지점에 있는 델훔(Tel Hum)지역이라고 한다. 예수 당시는 큰 도시였다고 한다. 이 곳에서 예수는 약 2년 동안 사시며 복음전도의 중심지로 삼으셨다.(마4:13) 그것은 가버나움이 선교 중심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가버나움은 동쪽으로는 다메섹을 거쳐 바벨론으로 가는 길목이 되고, 동북으로는 하맛과 하란을 거쳐 니느웨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된다. 남으로는 지중해와 애굽과 아라비아로 내려가는 통로가 된다. 따라서 동서(東西)의 물류의 교차 지점이 되어서 일찍부터 상업과 교역이 번창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관(막2:14)도 있었고, 로마 주둔군의 병영과 유대인의 회당(눅7:5) 등 중요한 기관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가버나움을 거점으로 하여 많은 사역을 행하셨다. 이 곳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의 다섯 제자를 부르셨고(마4:13, 18-22, 9:9), 백부장의 종의 중풍병과(눅7:1-10)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과(마8:14-15),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 병 환자를 고치셨고 또 많은 이적을 행하시며 진리를 가르치셨다.(마8:5-14, 9:1-8, 요6:55-59) 그 뿐만 아니라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부근의 갈릴리 지방과 남쪽의 예루살렘과 북으로는 두로(Tyre)와 시돈(Sidon)지방까지도 제자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하셨다.

이렇듯 가버나움이 선교의 중심지가 된 것은, 이 곳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갈릴리 해변의 자연 지세의 배경이 있고 또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소식이 메소포다미야 지역과 나일강 지역까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막1:28) 그러므로 예수께서 복음전도의 중심지로 가버나움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셨다.(마4:12-16) 가이드에 말에 의하면 근래 가버나움에서 고대시대의 한 이정표(里程標, mile stone)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 곳이 고대시대의 교통의 요지(要地)였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예수생애의 무대(특히 선교 범위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시돈.남으로는 예루살렘 주변이다.)]

[이스라엘에서 두로와 시돈(현재 레바논)으로 가는 길]

[베뢰아 지방]

[세계선교의 길목인 갈릴리 해변]

(2) 가버나움의 폐허와 유물

고대사회에서 번창했던 가버나움의 현재의 모습은 폐허의 벌판 위에 일부 복원된 옛 회당의 잔해(殘骸)와 돌무더기뿐 이였다. 이 가버나움의 폐허는 예수님에 의하여 경고된 비극 이였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프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고을들을 책망하셨다.

"화가 있으리로다 고라신아,

화가 있으리로다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다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다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1:20-24)라고.

예수께서 이 책망의 말씀을 하신 때로부터 대략 580여 년 후인 AD 614년경 가버나움은 모스렘 세력인 페르시아인들(현재의 이란)에 의하여 전멸되고 폐허가 되었다. 이 곳은 그 후 1905년 독일 탐험대에 의하여 발굴되기 시작함으로서 가버나움 회당의 유적지와 그 외 많은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가 현장에서 본 가버나움의 회당은 기층(基層)과 기둥, 벽들의 일부가 복원된 상태였다. 기층 몇 줄의 돌층은 예수 당시의 건물의 것으로 추정되고, 그 위에 복원시킨 석재들은 4세기(로마시대) 회당의 것으로 확연하게 색깔이 달랐다. 따라서 이 곳에서 발견된 돌 유물들도 고대 유대인들의 상징인 다윗의 별과 수양의 뿔, 언약궤와 메노라 촛대, 유대땅의 상징인 종려나무가 새겨진 구약시대의 것과 로마시대의 것들이 함께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본 회당의 기층구조는, 회당의 서쪽 벽측에는 학자와 바리새인들이 앉는 석좌(石座)가 한 줄로 길게 놓였고 북단에는 설교자의 강단이 있었다. 바로 그 자리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장소라 한다. 그 장소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마가복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어느 안식일 날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랐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Authority)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가버나움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예수님을 보고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때 예수께서, "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꾸짖으셨다. 이에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다 놀라 서로 물었다. "이게 웬일인고 권세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 하는도다."라고. 이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다.(막1:21-28)

가이드(guide)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 유대인 회당에서 행해지는 안식일 예배에서의 '말씀증거'(요새의 설교)는 회당장이 반드시 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의 참석자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새 말로 하면 회당장은 사회자 또는 MC(Master of Ceremonies)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고 또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다 한다.

이 회당은 1905년 두 명의 독일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하여 1926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현재의 모습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또 이 수도회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남쪽으로 가까운 갈릴리 호수방향 지점에서 AD 5세기경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되는 한 교회건물의 터를 발굴했는데, 그들은 이 터가 성 베드로의 집터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베드로)과 안드레(베드로의 동생)의 집에 들어가시어 열병을 앓고 있었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사 그 열병을 고치셨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막1:29-31, 마8:14-17) 지금 발굴되어 있는 집터의 위치가 회당에서 가까이 있는 베드로의 집의 위치에 상당하다고 믿는 것 같다. 현재 석조의 골조만 일부 복원되어 있는 그 집터의 교회는 작은 다락방이 있는 약 20평 내외의 규모의 건물인 것 같았다.

[가버나움 회당 전경]

[가버나움 회당의 유적 모습들]

[가버나움(Capernaum)의 유물들]

[가버나움(Capernaum)에서 발굴된 돌 유물들]

[가버나움 돌 유물]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 마을]

[오늘의 가버나움 풍경(갈릴리바다에서의 원경)]

[베드로의 집터(가버나움 회당에서 50m거리)]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세워진 8각형의 기념교회]

3) 가버나움의 백부장

예수 당시 가버나움엔 로마군 병영이 있었고 그 병영의 지휘관인 어떤 백부장이 있었다. 그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그의 종을 구원해 주시기를 청했다. 그때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께 나아가 간절히 이 백부장의 소원을 전하며 구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십니다. 그 백부장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는 장로 일행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셨다. 그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이를 본 백부장이 또 벗들을 보냈다.

이들이 전하길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백부장을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쫓는 무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백부장의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강건하여져 있었다.(눅7:1-10, 마8:5-10)

이 백부장이 지금 발굴되어 있는 유적지의 기층회관의 건설자인 것 같다. 이 백부장이 그 시대에 얼마나 훌륭한 인격의 로마 장교인가는 세례 요한의 훈계를 들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하였다.

무리가 세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대답했다.

세리(세무 공무원)들은,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니, "정(定)한 세(稅)외는 늑징(勒徵 : 불법적인 강제징수)하지 말라."고하였다.

군병(軍兵)들이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이들 물음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람에게 강포(强暴 : 우악스럽고 포악함)하지 말며 무소(誣訴 :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 고소하는 것)하지 말고 받는 요(料 :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였다.(눅3:7-14) 이 말씀을 들으면 예수가 오셨던 당시의 사회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했고, 세무 공무원들은 세금을 과징하여 착복하는 탐관오리가 많았고, 로마 군인들은 권력을 남용하는 잔인하고 포악한 자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유대인을 사랑했고 유대인의 회당을 지었으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온 이스라엘 중에서 으뜸이었다. 나는 이 백부장에 의하여 '유대인의 여호와는 만민의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은 물론 우리 이방인의 구세주로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깨달았다. 할렐루야.

- 다른 곳의 백부장들 이야기

성경에는 가버나움의 백부장 이외에 예루살렘의 백부장과 가이사랴의 백부장에 관한 기록도 있다. 예루살렘의 백부장은,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땅이 진동하고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지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때,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한 골고다의 현장 병사 지휘관이였던 백부장이다.(마27:54)

가이사랴의 백부장은 로마의 파레스타인 총독부가 있었던 가이사랴의 로마군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 고넬뇨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다가 하루는 환상 중에서 만난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가이사랴에 초청하여 말씀과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은 첫 이방인 세례교인이 된 사람이다. 이 가이사랴의 백부장과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같은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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