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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교회  님의 글입니다.
 울었더라( 막14:72) 2004-05-16 15:41:57, 조회 : 1,749, 추천 : 361

July 30

"And when he thought thereon, he wept" (Mark 14: 72).

Some feel that as long as Peter lived his tears flowed when he remembered how he denied his Lord.  This may be so, for his sin was very great and grace in him had afterward done a perfect work.  This same experience is common to all the redeemed family according to the degree in which the Spirit of God has removed the natural heart of stone.  We, like Peter, remember our boastful promise: "Though all men forsake You, yet I will not."  When we think of what we vowed to be and of what we have been, we  may weep whole showers of grief.  Can we, when we are reminded of our sins and their exceeding sinfulness, remain stolid and stubborn?  Do we cry to the Lord for renewed assurances of pardoning love?  May we never take a dry-eyed look at sin unless, before long, we have a tongue parched in the flames of hell.  Peter thought of his Master's look of love.  The Lord followed up the cock's warning voice with an admonitory look of sorrow, pity, and love.  That glance was never out of Peter's mind so long as he lived.  It was far more effectual than ten thousand sermons would have been without the Spirit.  The penitent apostle would be sure to weep when he recollected the Savior's full forgiveness which restored hims to his former place.  To think that we have offended so kind and good a Lord is more than sufficient reason for constant weeping.  Lord, smite our rocky hearts and make the waters flow.  

7월 30일

제목 : 울었더라

요절 :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14:72)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살았던 동안 그가 그의 주님을 부인했던 사실을 기억했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마 그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는  너무 컸고, 베드로 안에 있던 은혜는 후에 완전한 사역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경험은 하나님의 영이 돌 같은 자연인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 정도에 따라 모든 구속된 권속들에게 공통되는 경험입니다. 우리도 베드로 같이 우리의 자신 만만한 약속(장담)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버리지 않을 겁니다."(역자주1)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리라고 맹세했던 것과 지금의 우리의 실제의 모습(지금 되어 있는 모습)을 생각할 때 아마 우리는(그 격차가 너무 심해서) 깊은 슬픔(비통)으로 온 눈물을 다 쏟으며 통곡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죄들과 그들의 넘치는 죄악성을 기억할 때 멍청한 고집으로 버틸 수 있겠습니까?(즉 양심이 있다면 우리도 통곡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죄(赦罪)의 사랑에 대한 일신된 확신(더욱 새로워진 믿음)을 위하여 주님께 부르짖습니까? 주님, 우리가 멀지 않아 우리의 혀를 지옥 불에 불태우게 하지 않는 경우 이외는 결코 죄를 마른(울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즉 우리가 죄를 볼 때에는 멀지 않아 죄를 지은 우리의 혀가 지옥 불에 불탈 것을 생각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그 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감히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의 표정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예수님)은 슬픔과 연민과 사랑이 넘치는 애틋한 권유의 표정(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회개를 바라시는 표정)과 함께 수탉의 울음소리를 훈계의 경적(警笛)으로 따르게 했습니다.(즉 예수님은 닭소리를 통하여 베드로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 새벽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보내신 그 슬픈 눈빛(눈길)은 베드로가 살았던 동안(평생동안) 베드로의 마음에서 떠난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그 눈길은 아마 성령없이 행한 만번의 설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었습니다. 회개한 사도(베드로)는 주님께서 그를 이전의 자리로 회복 시켜준 구세주(예수님)의 그 완전한 용서를 회생했을 때 틀림없이 통곡했을 것입니다.(역자주2)

우리가 그처럼 친절하고 선하신 주님을 상심(傷心) 시킨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늘 울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넘칩니다. 주여, 우리의 바위 돌 같은 마음을 치셔서 샘물이 흐르게 하소서.

주1 마26:33

주2 막14:6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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