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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활을 믿는 이유 2007-03-18 15:58:57, 조회 : 3,486, 추천 : 341


내가 부활을 믿는 이유
Why I Believe in the Resurrection

본 메시지의 요지
인류 역사상 유일한 기적중의 기적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權能)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에서의 부활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함께 그 부활은 기독교(Christianity) 존립의 초석이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많은 불신자들의 회의에 대하여 제임스 케네디 박사는 그의 해박한 성경(Holy Bible), 세속적 역사서적(secular history books), 그리고 증거법상의 지식의 안목에서, 기독교의 주일, 부활절, 성찬식, 찬송가의 가사들, 초기 로마의 대박해(the Great Persecution)속에서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대 규모의 교회조직의 성장, 그리스도의 승천과 사도들의 순교,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내적 변화체험 등의 실례를 입증하면서, 그 부활의 역사적 진실성을 변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세기 동안 소수의 지성적인 기독교의 적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련하여 제기했던, 제자들에 의한 예수 시체의 도적설 및 사기설, 제자들의 환상 및 환각설, 그리고 예수의 기절설 등의 이론들에 대하여 항변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반증(反證)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글은 로마의 대박해(the Great Persecution)와 함께 오히려 이들 부활을 부인하는 반증의 이론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실성과 확실성을 역설(반어)적으로 변증(辨證)하게 하고 있다.

성경요절: To whom also he shewed himself alive after his passion by many infallible proofs, being seen of them forty days, and speaking of the things pertaining to the kingdom of God.(Acts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Since the beginning of time, men and women have responded to the death of loved ones with a cry like that of Job:
"If a man die, shall he live again?"(Job 14:14) Human philosophy and pagan religions have been able to answer with no more than a question mark, a wish or a vague hope.
The great genius of Greek philosophy, Plato, was asked: "Shall we live again?" His response: ‘I hope so, but no man may know." The tombs of Mohammed or Buddha or Confucius are occupied, but the tomb of Christ is empty to this day.
Why then do we believe in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is most important of all Christian doctrines, beside which all other doctrines are relatively insignificant? Even the cross of Christ without the resurrection symbolizes simply that One rejected by men, that One who was hanged and accursed by God. But it is by resurrection that Christ is declared the Son of God with power, and it is by resurrection that his atoning sacrifice is declared to be accepted by God. This is the center of the Christian faith. With it everything stands or falls. Therefore all skeptics through nineteen centuries have aimed their largest guns at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시간이 시작된 이후 남자나  사람들과 여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욥 14:14)라고 말한 욥(Job)의 부르짖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반응했다. 인간의 철학과 이방종교(기독교이외의 종교)들은 단지 물음표(?), 즉 소원이나 막연한 희망으로 대답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희랍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우리가 다시 살 수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나는 다시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누구도 모를 것이다”라고. 마호멧의 무덤이나, 불타의 무덤이나, 공자의 무덤은 채워졌지만 그리스도의 무덤은 오늘까지 비워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가? 이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의 모든 교리 중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 외의 교리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조차도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사람들에 의하여 거절되었던 사람, 로마의 사형수로 십자가에 달렸고 하나님에 의하여 벌받았던 사람일뿐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되었던 것은 부활로 말미암았다. 그리고 그분의 속죄의 희생이 하나님에 의하여 용납되었다고 선포되었던 것은 부활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이것에 의하여 모든 것이 서거나 넘어진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불신자(회의론자)들은 19세기 내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그들의 가장 큰 포문들을 겨누었다.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has been examined more carefully than the evidence for any other fact of history! It has been weighed  and considered by the greatest of scholars, among them Simon Greenleaf, the Royall Professor of Law at Harvard from 1833-48 who helped bring Harvard Law School to preeminence and who who has been called the greatest authority on legal evidences in the history of the world. When Greenleaf turned his mind upon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focused upon it the light of all the laws of evidence, he concluded that the resurrection of Christ was a reality, that it was a historical event, and that anyone who examined the evidence for it honestly would be convinced this was the case. So it was with Frank Morison, a British lawyer who set out to write a book repudiating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He wrote his book, but it ws not the book he set out to write. As he examined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is skeptical lawyer found it so overwhelming he was forced to accept it and become a believer. The book he did write, entitled 'Who Moved the stone'?,  sets forth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its first chapter is called "The Book That Refused to be Be Written." Lew Wallace also set out to write a book disproving the deity of Christ and his resurrection and ended up writing a famous book defending it. That book was entitled 'Ben Hur'.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Christ, in the minds of those who have taken time to examine it, is very, very significant. I have met many people who do not believe in the resurrection of Christ, but I have never met one person who has read even a single book on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who did not believe it.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역사상  다른 어떤 사실에 관한 증거보다 더 신중히 검사되어 왔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왔는데,  그 중 역사상 최고의 증거법의 권위자로 불려졌고, 하버드 법대를 저명하게 만들었던 하버드 법대의 로열 교수였던  사이몬 그린리프 교수에 의하여 특히 심중하게 고찰되었다. 그린리프가 그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부활로 돌려서 모든 증거법의 지식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집중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실이었고,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조사했던 누구라도 정직하게 이것은 사실이었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책을 지으려고 착수했던 영국의 법률가였던 프랑크 모리슨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그는 그의 책을 저술했다. 그러나 그 책은  그가 쓰려고 시작했던 그 책이 아니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검토했을 때 이 불신의 법률가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는 그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었다. 그가 저술했던 “누가 그 바위를 옮겼는가?”라는 제목의 책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책의 제1장은 “쓰여지기를 거부했던 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루 월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부활을 반증하는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옹호하는 유명한 책을 쓰게 되었다.  그 책이 “벤 허(Ben Hur)”라는 제목을 붙인 책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증거의 조사를 위한 시간을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증거는 매우, 매우 의미가 심장(深長)하다.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고,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Let us consider what some of these evidence are. There is the fact of the Lord's Day. For thousands of years the Hebrew people had held their Sabbath doctrine. Then we find a group of early Christian who were Jews changing the day of worship from the seventh to the first day! What could account for their abandoning something to which they had held so tenaciously?
Nothing other than such a monumental event as the resurrection of Christ from the dead, which took place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his appearance to his disciples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and the outpouring his Spirit upon the church at Pentecost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So we read that it was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that the disciples of Jesus Christ met to worship him.
Then there is the fact of Easter. This was a replacement of the Jewish festival of the Passover. Why did the Jews who  held the Passover to be the most significant event in the history of their nation abandon it in favor of the celebration of Easter, which was the festival of festivals among the Christian? The greeting was: " Christ is risen!" And the response: "Christ is risen indeed!" What other fact than that of the resurrection can explain the existence of the festival of Easter, which traces itself all the way back to the time of the early church?
There is the fact of the Christian sacraments, which not only point to the death and suffering of Christ, but also to his resurrection in power. These can be traced back in unbroken succession to the very time of the death of Jesus Christ.
There is the fact of Christian art. In the catacombs of Rome, from the time of the persecutions, we find carved into the walls representations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as a part of the very earliest beliefs of the Christian.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 증거들의 일부들이 무엇인가를 고찰해보자.
첫째(역자설명: 이 순번은 역자가 편의상 붙인 것임),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主日)에 관한 사실이 있다. 수 천년 동안 히브리 사람들은 그들의 안식일(安息日)교리를 지켰다. 그런데 우리는 한 무리의 초기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예배일을 일곱 번째 날(안식일, 토요일)에서 첫째 날(일요일)로 변경한 것을 발견한다! 그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지켰던 중요한 예배일(안식일)을 포기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 같은 그런 기념비적인 사건 이외의 어떤 것도 없다.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일주일의 첫째 날에 일어났고, 그의 제자들에게 출현하신 것도 일주일의 첫째 날이었고, 오순절 때 교회 위에 그의 성령을 부으심도 일주일의 첫째 날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 분을 경배하기 위하여 만난 날이 일주일의 첫째 날(일요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고 있다.
그 다음 두 번째로, 부활절의 사실이 있다. 이것은 유태인의 유월절 축제의 교체이었다.  그들의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제인 유월절을 지켜왔던 유태인들이 왜 그리스도인들 중의 축제중의 축제였던 부활절의 축제를 위하여 유월절을 포기했던가?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는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다!” 그리고 그 대답은 “진실로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다!”이었다. 부활절의 축제의 존재를 - 그 축제 자체가 초기교회의 때까지 곧바로 거슬러 올라간다 - 그 부활의 사실이외의 어떤 사실이 설명할 수 있겠는가?
셋째로, 기독교인의 성찬식이 있다.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가르킬 뿐만 아니라  그의 권능의 부활을 가르킨다.  이 성찬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당시까지 단절 없는 연속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넷째로, 기독교인의 예술의 사실이 있다. (즉  초기 기독교인들이 남긴 예술작품들이 증거하고 있다.) 로마의 박해시대로부터 시작된, 로마의 카타콤(지하공동묘지)에서, 우리는 가장 초기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묘사(표현)를 카타콤의 벽들에 새겨 놓은 것을 발견한다.


There is also the fact of Christian hymnody. In the earliest days of the Christian church, hymns were sung to to the resurrected Jesus Christ.
Then there is the undeniable fact of the Christian church.
Many people do not make the connection between the church and the resurrection, but all scholars have. The Christian church is the largest institution that exists or has ever existed in the history of the world. The Christian church is five times larger than the Roman Empire at its greatest extent. More than one billion three hundred million people this day profess to worship Jesus Christ as the living and risen Son of God.
How did such an institution come into existence? As someone said: "The Grand Canyon was not formed by an Indian dragging a stick." Neither was an institution the size of the Christian church brought to pass by the daydreams of idle dreamers in days gone by. It is known by all historians that the Christian church can be traced back to the city of Jerusalem in A.D. 30, the time of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You can peruse H. G. Wells's 'Outline of History' or other secular history books and find that generally they tell the story of the life and death of Jesus Christ. Then a new chapter begins telling of the rise of the Christian church and the disciples' preaching, and somehow there is a connection between those two chapters. It is an indisputable fact of history, not faith, that the largest institution in the history of the world began in Jerusalem A.D. 30 when the Apostles began to preach that Jesus Christ rose from the dead. The very heart and substance of the message of the early Christians was that Christ was risen from the dead.

다섯째로, 또한 기독교의 찬송가의 사실이 있다. 가장 초기의 기독교에 있어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찬송가를 불러드렸다.
다음 여섯째로, 명백한 기독교의 교회의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교회간의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모든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교회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회는 세계역사상 존재하고 있거나 이제껏 존재해했던 최대규모의 단체(조직체)이다. 기독교의 교회는 가장 전성기의 로마제국보다 5배나 더 크다. 오늘날 13억 이상의 인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경배한다고 고백한다. 그런 큰 단체(세계적인 조직체)가 어떻게 생겼는가?  어떤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그랜드 캔연(미국 아리조나 주의 북서부에 있는 코로라도 강의 대협곡)은 어떤 인디언이 나무토막을 질질 끌어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규모(크기)가 기독교회만큼 큰 단체는 지나간 날에 있었던 한가한 공상가들의 백일몽에 의하여 생기지 않았다. 기독교의 교회의 기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있었던 때인, A. D. 30년의 예루살렘 도성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역사가들에 의하여 알려지고 있다.
그대는 H. G. 웰즈의 “역사 개론”이나, 다른 세속적인 역사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그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새로운 장(章)에서는 기독교의 교회의 등장(rise)과 제자들의 설교를 말하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튼 세계의 역사상 가장 큰 단체(교회)는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설교를 시작했던 A.D. 30년에, 예루살렘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단지 마음의 믿음만이 아니고, 논란할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설교(메시지)의 핵심과 내용은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The first message delivered at Pentecost was entirely about the resurrection of Christ: about prophecies that went before it in the Old Testament; about the fact that they had crucified the Lord of glory and God had raised him from the dead; about the fact that they were the witnesses of these things; about the fact that the risen Christ had now poured out his spirit; and about the fact that because he was risen, he could grant the remission of sins to those who would believe in him.
All the Scripture and the testimony of unbelievers and hostile enemies of Christianity as well declare that the church was spread everywhere because of this teaching that Christ had risen from the dead. It is a fact that the church of Jesus Christ came into being because the Apostles declared that he rose from the dead.
Three alternatives are possible: (1) this was fraud, and the Apostles  lied; (2) they were deluded, deceived, and in error; (3) Christ did rise from the dead. Let us consider the efforts that have been made by skeptics to deny the fact of the resurrection.
In over twenty years of studying the resurrection, I have found that it is like an island guarded by all sorts of reefs positioned around it in concentric circles. Any ship that attempts to get through to destroy that island will be grounded on one or another of those reefs. Only a handful of theories have been propounded by skeptics, atheists, and unbelievers who have turned their greatest guns upon the resurrection.  All one has to do to be even more convinced about the resurrection of Christ is to examine these theories to see how vain they are.

오순절에 전달되었던 첫 설교(메시지)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사건 이전에 구약성경에 있었던 예언의 사실, 그들(유태인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 그들이 이 일들의 증인이었다는 사실,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서 그 때 그의 성령을 부으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기 때문에, 그분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모든 성경과 불신자들의 증거와 기독교의 적대자들은, 교회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이 가르침 때문에 도처에 퍼져나갔다고 언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들이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공포했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논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가능한 선택(명제)들이 있다.
(1) 사기설: 이것(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기였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거짓말을 했다.
(2) 착각설: 사도들은 착각을 했고, 속임을 당했고, 오해(실수)를 했다.
(3) 부활설: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기 위하여 불신자들이 기울였던 노력을 고찰해보자.
나는 20년이 넘는 동안의 부활의 연구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주변을 갖가지 종류의 암초들이 동심원의 형태로 둘러싸서 지켜주고 있는 어떤 섬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 섬을 파괴하기 위하여 뚫고 들어가려는 모든 배는 이들 암초중의 어느 하나에 걸려서 좌초할 것이다. 회의론자들, 무신론자들, 그리고 그들의 최대의 대포들로 부활을 공격했던 불신자들에 의하여 소수의 이론들이 제출되었을 뿐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더욱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누구나 해야할 모든 일은 이 이론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이것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The Cause and Cure of Infidelity by Dr. David Nelson records that as a young man in college and graduate school he lost his faith but was still upset by an uneasy conscience. In order to bolster himself in his unbelief, he read the writings of all the greatest atheists. He had enough mental acumen to see that their arguments were so fatuous and empty that they would not hold water. This led to his conversion to Jesus Christ.
We are confronted with the fulfillment of the prophecies f the resurrection of Christ in the Old Testament; of the predictions of Christ himself that he would be taken and scourged and would be crucified, and on the third day would rise again from the dead. If we suppose that he was involved in some conspiracy, we are confronted with the character of Jesus Christ himself - this man whom the whole world joins together to declare to be the greatest, the most ethical, the most pure, the most honest man the world has ever known.
We are confronted with the empty tomb - that rock upon which many a theory has gone aground. We are confronted with the grave clothes; with the testimony of the witnesses; with the twelve different occasions when Christ appeared to people, with over five hundred people who saw him risen; with the nature of these appearances in the morning and afternoon and evening, inside and outside, in which they handled and touched him; with the tremendous transformation of the Apostles from fearful, timid cowards to bold proclaimers of the Gospel. The Apostle Peter, who one day was afraid of a little maiden, was a few day later confronting the whole Sanhedrin, affirming to them that he could not but declare that which he had seen and heard.
Then we have the faithfulness, the character, the suffering and the death of these witnesses, most of whom sealed their testimony with their blood.

데이빗 넬슨 박사에 의하여 저술된 “ 불신의 원인과 치유”라는 책은 그가 대학과 대학원의 젊은 학생시절에 그는 그의 신앙을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불안한 양심으로 혼란스러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자신의 불신앙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는 가장 위대한 모든 무신론자들이 지은  책들을 읽었다. 그는 그 무신론자들의 주장이 매우 얼빠지고 공허해서 물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만큼 지적 총명이 충분했다.(즉 무신론자들의 주장이 매우 엉성하다는 뜻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개심을 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예언의 성취에 직면하고 있다.(즉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취된 것을 보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어떤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상상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의 인격(특별한 인품)에 직면한다 -  전 세계가 이 사람을 한 목소리로, 이 세상이 이제껏 알았던 가장 위대하고, 가장 도덕적이고, 가장 순결하고,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 사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와 무관한 신성한 인격자이시다.)
우리는 빈 무덤에 직면한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했던 많은 이론이 빈 무덤이라는 그 바위(암초)에 좌초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의(시체에 입히는 옷)에 직면한다.
우리는 증인(목격자)들의 증언에 직면한다. 예컨대, 다시 사신 예수를 보았던 500 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열 두 번의 갖가지의 상황들에 직면한다.
우리는 아침과 오후와 저녁에, 집안에서와 집밖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손대고 만졌던 여러 모양의 성격에 직면한다.
우리는 무서워하고 겁 많은 겁쟁이들이 담대한 복음의 전도자가 된 사도들의 놀라운 변화에 직면한다.
지난날 작은 소녀를 두려워했던 사도 바울은 며칠 후 그가 보았고 들었던 것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고  산헤드린(옛 예루살렘의 대법원)의 전체 공회원들에게 증언하면서,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 다음 우리는 이 증인들의 그 충성, 그 인품, 그 고통과 그 죽음을 알고 있다 - 이 증인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피로 그들의 증거를 보증했다.(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쳤다.)

This is a vitally important fact. In the history of psychology it has never been known that a person was willing to give his life for what he knew to be a lie. I used to wonder why it was that God allowed the Apostles and all the early Christians to go through such suffering, such tremendous unbelievable tortures. The foundations of Christianity are so established that they are absolutely unshakable today. Paul Little said, "Man will die for what they believe to be true, though it may actually be false. They do not, however, die for what they know is a lie.
There the fact and  the testimony of Christ's ascension. There is undeniable fact of the tremendous convers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Apostle Paul - from Saul, the persecutor and murderer of Christians, to Paul, the greatest apostle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Let us consider some of the various theories which try to explain away the resurrection. In the area of fraud, there is the idea that either the disciples themselves, or the disciples in conjunction with Jesus Christ, conspired to deceive the world into believing that he had risen from the dead. This was the earliest theory to be set forth. It is found even in the Bible when the guards came in Jerusalem and reported to the Sanhedrin (the ruling body of the Jews) that the tomb was empty and all the things that had transpired. The Sanhedrin gave the guards large sums of money and said: "Saying, Say ye, His disciples came by night, and stole him away while we slept.
And if this come to the governor's ears, we will persuade him, and secure you" (Matt. 28:13-14) In the entire history of jurisprudence there has never under any circumstances been a witness who has been allowed to testify to what transpired while he was asleep.

이것(다음)은 지극히 중요한 하나의 사실이다. 심리학의 역사상에서 어떤 사람이 그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려고 한 사람은 결코 알려진 것이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왜 사도들과 초기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그토록 믿을 수 없는 지독한 고문인, 엄청난 고통을 겪게 하셨는지를 늘 의아히 생각했다. 기독교의 기초들은 매우 확고함으로 그들은 오늘날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펄 리틀은 "사람들은 실제로 거짓일지라도 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위하여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 거짓을 위하여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사실과 증거가 있다. 사도 바울의 굉장한 개종과 변화라는 명백한 사실이 있다. -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박해자요, 살인자인 사울에서,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울로 변화하였다. 부활을 잘 설명하려는 다양한 이론들의 몇 가지를 생각해보자.
사기(기만)의 영역에서는, 제자들 자신들이나, 또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제자들이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속여서 세상이 믿도록 공모했다는 생각이 있다. 이것이 최초로 제기된 이론이었다. 이 사기(기만)설은 심지어 파수꾼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 무덤은 비었다는 것과 현장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유태인들의 통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에 보고했을 때의 대목의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 이 대목을 보면- 산헤드린은 파수꾼들에게 거금(큰 돈)을 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28:13-15).
법률학의 전 역사에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이던 어떤 사람이 잠잤던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 허용되었던 증인은 결코 없었다.

"While we were asleep, the apostles came." For a Roman soldier to fall asleep on guard duty meant inevitably the death penalty. And this was rigorously applied.
The Scottish theologian Dr. Principal Hill commented on this idea of falsehood in what I think is a classic quote. He said, after examining all the evidence, "But if not withstanding every appearance of truth, you suppose their testimony to be false, then inexplicable circumstances of glaring absurdity crowd upon you. You must suppose that twelve men of mean birth, of no education, living in that humble station which placed ambitious views out of their reach and far from their thoughts, without any aid from the state, formed the noblest scheme which ever entered into the mind of man, adopted the most daring means of executing that scheme, and conducted it with such address as to conceal the imposture under the semblance of simplicity and virtue. You must suppose that men guilty of blasphemy and falsehood, united in an attempt the best contrived, and which has in fact proved the most successful, for making the world virtuous; that they formed this singular enterprise without seeking any advantage to themselves, with an avowed contempt of loss and profit, and with the certain expectation of scorn and persecution; that although conscious of one another's villainy, none of them ever thought of providing  for his own security by disclosing the fraud, but amidst sufferings the most grievous to flesh and blood they persevered in their conspiracy to cheat the world into piety, honesty and benevolence. Truly, they who can swallow such supposition have no title to object to miracles."

"우리가 잠잤던 동안, 제자들이 왔다."(도대체 잠잤던 사람이 어떻게 제자들이 왔던 것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인가! 참으로 이 말은 넌센스이다.)
로마 군인이 경비근무 중에 잠자는 것은 반드시 사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프린시펄 힐 박사는 내가 알기에는 이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고전적인 인용문으로 논평했다. 그는 모든 증거를 검토(조사)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관상 모두 진실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그들의 증거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역연(歷然)한 모순의 상황이 그대에게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대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그들의 손이 닿지 않고, 그들의 생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큰 꿈을 두었던 비천한 신분으로 사는 천출(賤出, 천한 신분의 출생)들인 열 두 사람(예수의 제자)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없이 이제껏 인간의 마음에 들어간 적이 없는(생각해 본적이 없는) 가장 고상한 계획(책략)을 기획했고, 그 계획의 실행을 위한 가장 용감한 수단을 채택했고, 순진(純眞)과 덕행(德行)의 가장아래 사기행위(역설적 표현임)를 감출 만큼 매우 능숙하게 그 계획을 수행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독신(瀆神, 하나님에 대한 불경)과 위선을 갖고 있는 죄인들이 도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가장 잘 고안되고, 사실상 가장 성공했던 것으로 증명되었던 시도를 함께 제휴(提携)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손익(損益, 손해와 이익)을 단연코 무시하고, 경멸과 핍박을 확실히 예상하면서 그들 자신들에 대한 어떤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 유별난 사업을 만들었고, 서로의 악행(惡行, 선행의 역설적인 표현)을 알고 있으면서, 그들 중 누구도 그 사기(역설적인 표현)를 노출함으로써 절대로 그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혹독한 육체(살과 피)의 고통 중에서도 그들(제자들)은 세상이 경건하고, 정직하고, 사랑하도록 속이는 그들의 음모(역설적인 표현임)에 끈기 있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그대는 생각해야한다.(역자 해설: 이런 것들이 역연한 모순의 상황들이다.) 진실로 이러한 추정들(위에 언급한 상황들의 추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기적에 반대할 자격이 없다(즉 기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Lawyer Frank Morison says: "We have to account not merely for the enthusiasm of its friends [of the church], but for the paralysis of its enemies and for the ever-growing stream of new converts which came over to it. When we remember what certain highly placed personages in Jerusalem would almost certainly have given to have strangled this movement at its birth but could not - how one desperate expedient after another was adopted to silence the apostles, until that veritable bow of Ulysses, the Great Persecution, was tried and broke in pieces in their hands - we begin to realize that behind all these subterfuges and makeshifts there must have stood a silent, unanswerable fact, a fact which geography and the very fates themselves had made immovable. We realize also why it was that throughout the four years when Christianity was growing to really formidable dimensions in Jerusalem, neither Caiaphas nor Annas, nor any recognized member of the Sadduccan camarilla, whose prestige and personal repute was so deeply affronted and outraged by the new doctrine, ever took the obvious shortcut out of their difficulties." If the body of Jesus still lay in the tomb in which Joseph had deposited it, or if they themselves had taken it and placed it somewhere else. why did they not say so? No, they were paralyzed and totally incapable of doing anything about it. Their only expedient was the Great Persecution.
Some have said that the resurrection was a legend that just gradually grew up. This was a popular theory in the last century when the higher critics said that the Gospels were written a hundred or two hundred years after the events, but the advance of archaeology has silenced this criticism.
법률가 프랭크 모리슨은 "우리는 교회의 우호자(동조자)들의 열중(열성)에 대하여 설명해야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적대자(반대자)들의 무력(無力)과 교회로 넘어온 새로운 개종자(회심자)들의 지속적인 성장 추세에 대하여서도 설명해야 한다. 예루살렘의 어떤 고위 인사들이 이 운동을 그 초기에 목조르기 위하여 거의 확실하게 무엇(역자해설: 어떤 반응)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을 우리가 회상할 때 - 대 박해라는 저 유리시즈의 실제의 활이 사용되었으나 제자들의 손안에서 마침내 산산이 부셔지기까지, 사도들을 침묵시키기 위하여 어떤 하나의 필사적인 수단이 어떻게 계속 채택되었는가를 생각할 때 - 우리는 이 모든 구실들과 수단들의 배후에는 어떤 말못하고, 대답할 수 없는 사실, 즉 위치와 바로 그 운명 자체들이 움직일 수 없게 했던 사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차츰 이해하기 시작한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방대한 규모에로 성장하고 있었던 4 년 간 내내 가야바(18-36 A.D., 행4:5-6)도, 안나스(7-33 A.D.,눅3:2 요18:13)도, 사두개인 단체의 어떤 저명한 회원(막12:18, 마22:23)도, 새 교리에 의하여 그의 권세와 개인적인 명성(평판)이 엄청나게 모욕되고 훼손되었는데도  그들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명백한 지름길을 결코 택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시체가 요셉이 제공해주었던 무덤(요19:38-42) 안에 지금도 누어있거나, 또는 제자들 자신들이 그 시체를 가져가서 다른 곳에 두었다면, 왜 그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무능했고 전적으로 그것(교회의 성장)에 관하여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수단은 대 박해(大迫害)였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은 단지 점차적으로 성장했던 하나의 전설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가들이 복음서들(역자 해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들을 말함)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백년이나 이 백년 후에 쓰여졌다고 말했던 지난 세기(역자 해설: 19세기)에 유행했던 이론이었다. 그러나 고고학의 발전은 이 비판을 침묵시켰다.

Now we know that the Gospels go right back to the authors whose names they bear, and that the testimony of the resurrection goes back to the very decade in which it took place.
Therefore, there was no possible time for legend to develop.
Furthermore, the legend had already developed at least sixteen years before Paul could say that there were five hundred people, most of whom were alive at that time, who had seen the resurrected Christ.
Still less tenable, perhaps, is the vision theory. This speculates that the appearances of the resurrected Christ were simply visions or hallucinations brought about by the great expectations these people had that Jesus would rise from the dead. If that were the case, how do we account for the fact that the women came to the tomb bearing spices?  Were they to anoint a risen Christ or a dead body?  How do we account for the fact that Mary sat outside the tomb weeping because her Lord was dead and the corpse had stolen? How do we account for the fact that the two on the road to Emmaus were totally disconsolate and dejected because they had thought the crucified Christ was the Messiah who should have delivered Israel, but now were convinced everything was lost? How do we account for the unbelief of the disciples in the Upper Room where Jesus rebuked them for their disbelief?
No, they were not expecting a resurrected Christ!
In the history of hallucinations there is no incident in which five hundred people from different backgrounds, of different temperaments, ever saw the same vision at the same time! Furthermore, there are innumerable other reefs upon which that ship will go around. If these were simply hallucinations that they were seeing, did none of the disciples think about going to the tomb to see if the body was sill there?

이제 우리는 복음서들은 그 복음서들이 갖고 있는 그들의 이름의 저자에게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부활의 증거도 그 부활이 일어났던 당시의 10 년 간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전설이 발전할만한 가능한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그 전설은 적어도 바울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았던 오 백 명의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해의 16년 전에 이미 발전되었었다. 그 당시 이들 500 명중의 대부분이 살아 있었다고 한다.
아마 환상설의 이론은 훨씬 더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이 환상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출현은 단지 이들(예수의 제자들)이 가졌던 기대, 즉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날 것이라는 큰 기대로 말미암아 생긴 환상이나 환각이었다고 추측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여인들이 향료를 갖고 무덤에 왔던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 여인들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는가 아니면 죽은 시체에 부으려고 했는가? (역자 설명: 이 문장은 답을 알면서 묻는 수사 의문문이다.)
우리는 마리아가 주께서 죽었고 시체는 도적 당했기 때문에 울면서 무덤밖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길을 걷던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어야할 구세주(메시야)로 생각했으나, 이제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슬퍼서 낙심되었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예수께서 이전에 제자들의 불신앙을 책망했던 바로 그 다락방에서 그 제자들이 의심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렇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환각의 역사에서, 각각 다른 배경을 갖고, 각기 다른 기질을 갖고 있는 오 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은 비전(환상)을 보았던 사건은 결코 없다.
게다가, 그 배(환각설)가 좌초할  무수한 다른 암초들이 있다. 이들(오 백명의 환상)이 단지 그들이 보고 있었던 환각이라면, 제자들 중 누구도 예수의 시체가 아직 그 곳(무덤)에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 무덤에 가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When they proclaimed their "hallucinations," did none of their enemies ever consider taking a few steps over to examine the tomb? When Peter preached at Pentecost about his "great hallucination," he was only ten minutes away from the tomb. Thousands of people believed; other Thousands heard and did not believe. Did no one think of walking down the street to check it out? Hardly! Certainly those sophisticated, conspiring Sadducees would have taken every opportunity to show that this was simply a hallucination.
Lastly, there is the "swoon" theory. This has been set forth by Venturini; it is found in the writings of Mary Baker Eddy; it is found in the writings of Hugh Schonfield in 'The Passover Plot.' It is interesting, however, that for over eighteen hundred years there was never a whisper from the friends or the most implacable enemies of Christianity that Jesus Christ had not died. Some of these recent writers have now conceived the idea that Jesus had simply swooned, was taken down from the cross and thought to be dead; then, in the coolness of the tomb, he revived and came out and convinced his disciples that he had risen from the dead. That ship would never have gotten within a hundred miles of our resurrection island.
Consider these facts: Ignored is the wound of the centurion - delivered into the side with a Roman spear, producing both blood and water - empirical evidence that life had ceased, because the blood had separated into its constituent elements. There is the testimony of the centurion who was sent by Pilate, a man who dealt and trafficked in death, whose business it was as an executioner to know that Jesus was dead.

그들이 그들의 "환각"을 선언했을 때 그들의 원수(적대자)들 중 누구도 그 무덤을 조사하기 위하여 도대체 몇 걸음 걸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베드로가 그의 "큰 환각"(역설적 표현: 베드로가 직접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건)을 오순절에서 설교했을 때, 그는 그 무덤에서 단지 10 분 거리에 있었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믿었다.(참고 행2:41) 다른 수 천명은 듣고 믿지 않았다. 누구도 그 무덤을 점검하기 위하여 무덤으로 가는 길거리를 걸어가지 않았는가? 가지 않았다! 확실히 이들 약고, 음흉한 사두개인들은 부활은 단지 환각이라는 증거를 보이기 위하여 모든 기회를 다 포착했을 것이다.(그럼에도 결코 그들은 어떤 반증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절설이 있다. 이것은 벤투리니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이것은 메리 베이커 에리의 저술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휴 샨필드의 작품인 "유월절 음모"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지난 1800 여 년 간 교회의 동조자들이나 가장 앙심 깊은 적대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았다고 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근대의 작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요즘에  예수는 단지 기절했고, 십자가에서 내려져서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그 후에 무덤의 냉기 속에서, 그는 소생해서 나왔고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것을 믿게 하였다는 생각을 했다. 이 배(기절설)는 우리의 부활의 섬의 백 마일 안에 결코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심사숙고해보자.
백부장의 상처가 무시되고  있다 - 이것은 로마 군병의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서 피와 물이 나오게 한 상처이다(요19:34) - 이 상처는 피가 그의 구성성분(요소)으로 분리했기 때문에 생명이 끝났다는 경험적 증거이다.
빌라도가 보낸 백부장의 증거가 있다. 이 사람(백부장)은 사람의 사망에 관한 공무를 관장했던 사람이었고, 그 당시 그의 임무는 사형집행관으로서 예수가 죽었다는 것을 식별하는 것이다.

Then there was the fact of the grave clothes. The Jews wrapped bodies in these grave clothes and used a hundred pounds of spices between the folds, sealing those clothes around the corpse, mummylike. The head was also wrapped.
Medical authorities state that if Jesus had swooned, open air was needed, not a closed tomb. Certainly what was not needed were grave clothes wrapped around his head and spices covering nose and mouth. Furthermore, to place a person in such a swoon in a cold grave would bring about a syncope or cessation of his heartbeat, if he had been alive.
Suppose he did extricate himself from these grave clothes, without in any way disturbing them, and then go to the huge stone which sealed the tomb. He would have had to move it  with hands that had been pierced with the large Roman spikes used for crucifixions. He would have had to place them on the flat inside of this enormous stone and simply roll it away.
Greek terms in the Gospels indicate that it was rolled uphill. Indeed, that is a miraculous feat in itself!  He then would have had to overcome a Roman armed guard and walk fourteen miles that afternoon to Emmaus and back. That was to loosen up his feet after the spikes had pierced them, to get in shape for his walk all the way to the north of Palestine to Galilee where he climbed a mountain!

다음에 수의(시체에 입히는 옷)에 관한 사실이 있다. 유태인들은 이런 수의들로 시체를 쌌다. 그리고 미이라같이 수의로 시체를 감싸면서 수의의 겹겹사이에 백 파운드의 향료를 사용했다. 예수의 머리도 싸여졌다. 의학권위자들(의무당국)은 만일 예수가 기절했다면, 공기가 소통되어야하고, 폐쇄된 무덤이 아니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틀림없이 불필요한 것(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수의가 그의 머리를 싸는 것과 향료가 코와 입을 막는 것이다. 게다가, 예수가 살아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기절상태에 있는 사람을 차가운 무덤 안에 놓아두는 것은 졸도나 심장박동의 중지(사망을 의미함)를 초래하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어떻든 수의를 찢지 않고 그 자신이 그의 수의에서 벗어난 다음에, 빈틈없이 무덤을 막은 큰 바위로 갔다고 상상해 보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 위하여 사용했던 로마의 큰 대못들로 찔렀던 손으로 큰 바위 돌을 옮겨야 했었을 것이다. 예수는 그 큰 바위의 평평한 안쪽에 두 손을 대고 그 바위를 간단하게 굴렸어야했을 것이다.
복음서들에서 쓰여진 그리이스 말들은 그 바위는 오르막으로 굴려 올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기적적인 묘기다. 그때 예수는 무장한 로마 군병(파수꾼)을 제압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엠마오로  14 마일 걸어갔다 와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대못들이 찔렀던 예수의 발들을 느즈러지게 푸는 것이었고, 예수께서 올랐던 산이 있는 갈릴리를 향하여 파레스타인의 북부로 가는 온 길을 걷는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몸을 추스르는 것이었다.

The famous critic David Strauss, who did not believe in the resurrection but also did not believe in such nonsense as the "swoon" theory, said: "It is impossible that one who had just come forth from the grave, half dead who crept about weak and ill, who stood in need of medical treatment, of bandaging, strengthening and tender care, and who at last succumbed to suffering, could ever have given to the disciples the impression that He was a conqueror over death and the grave - that He was the Prince of Life - [an impression] which lay at the bottom of their future ministry.
Such a resuscitation could only have weakened the impression which He had made upon them in life and in death."
Consider the ascension of Jesus Christ. Did this One who had managed to resuscitate himself and get out of the tomb also fly up into the sky? This is what the disciples affirmed. Or are we to involve the disciples in this fraud? Remember, they subsequently gave their lives in horrible death. No, All the theories that have been propounded fall into the dust as we examine facts so evident that no one has ever been able to refute them.
The empty tomb is admitted not only by the friends but also by the foes of Christianity. The Roman guard admitted it; the Sanhedrin tacitly admitted it by telling the soldiers to say that his disciples had stolen him.
Trypho, one of the earliest and greatest Jewish apologists, in a dialogue with Justin Martyr speaks of "one Jesus, a Galilean  deceiver, whom we crucified; but his disciples stole him by night from the tomb, where he was laid when unfastened from the cross, and now deceive men by asserting that he has arisen from the dead and ascended into heaven."

부활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절설 같은 헛소리도 믿지 않았던, 데이빗 스트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대체 방금 무덤에서 나왔던 사람, 아프고 연약한 초주검 된 몸으로 기며 헤매었던 사람, 의약치료와 붕대를 감아주고, 체력을 보강해주며, 자상한 간호가 필요했던 사람, 그리고 마침내 고통으로 쓰러졌던 사람인 그가 죽음과 무덤을 이긴 정복자였던 인상-생명의 왕이었던 인상- 즉 제자들의 장래의 사역의 바탕이 된 그런 인상을 제자들에게 줄 수 있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소생은 그의 삶과 죽음에서 제자들에게 심어주었던 인상을 오히려 약화시키기만 했을 것이다." 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생각해 보라.
자신을 가까스로 소생시키고 무덤 밖으로 나왔던 이 사람이 또한 하늘로 날아올라 갔는가?  이것은 제자들이 증언했던 것이다. 혹시 우리는 제자들의 이 증언을 사기(기만)에 포함시킬 것인가?  기억하라, 그들은 그 후에 끔찍한  죽음에 그들의 생명을 바쳤다. 아니다(절대로 그들은 사기꾼이 아니다). 제기되었던 모든 이론들은 누구도 도저히 그들을 반박할 수 없었던 매우 명백한 사실들을 우리가 검토할 때 티끌이 된다. 빈 무덤은 기독교의 동조자들  뿐만 아니라 원수(적대자)들에 의해서도 인정되었다. 로마의 파수꾼이 그것을 인정하였다. 산헤드린(공회)이 군병들에게 그의 제자들이 그를 도적질했다고 말하라고 말해줌으로써 그것을 넌지시 인정했다.
가장 초기의 가장 위대한 유태인 변증자들 중의 한 사람인, 트리포는 저스틴 마터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갈리리의 사기꾼인 예수라는 사람을 우리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서 풀려서 놓였던 무덤에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그를 훔쳐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승천했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라고.

So even Trypho admits the tomb was empty, setting forth the theory that the disciples stole the body, a theory nobody believes today.
There is the final fact of Christian experience: that this risen Jesus Christ has gone throughout all the world and that he has reached down  and transformed human beings in every nation, tongue, and tribe of this earth; that countless millions of people have come to know that he is alive from the dead and has come to enter their lives and transform them. He is the One who says: "I am he that liveth, and was dead; and, behold, I am alive for evermore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Rev. 1:18; John 11;26).
Even now Christ stands knocking at the door of our hearts and he says, "If any man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have intimate communion with him"(Rev. 3:20). Unless we have come to know him experientially in the laboratory of our own souls, we are without hope in this world and the world to come. For Jesus and his resurrection are the only hope of mankind. Without that, we have nothing to look forward to but a  black hole in the ground.
Christ is risen, indeed! He is alive, as he said, and he is willing to come and live in our hearts if we are willing to repent of our sins and place our trust in him who died for us and rose again.

그러므로 트리포조차도 오늘날 누구도 믿지 않는 이론, 즉 제자들이 그 시체를 훔쳤다는 이론을 진술하면서, 그 무덤은 비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의 체험적 사실이 있다.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에 두루 가셨고, 그는 온 세상에 이르러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방언(언어)과 모든 종족의 인간들을 변화시켰다는 사실, 무수한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음 같은 말씀을 하신 분이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18)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6).
지금도 그리스도는 서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리고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의 실험실에서 체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세상과 내세에서 소망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와 그분의 부활은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지옥(땅속의 음부)이외의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진실로,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다! 그분은 그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살아 계신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예수 그리스도)을 의지한다면(믿는다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속에 기꺼이 오셔서 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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