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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옥을 믿는 이유 2007-02-05 16:58:22, 조회 : 3,535, 추천 : 419

내가 지옥을 믿는 이유

And whosoever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Rev. 20:15)

성경요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Why I beliebe  in hell! No subject in the world is so repugnant to the human mind as this one, yet no subject is of greater importance.
Jesus wept when he contemplated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God himself says, "I hav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the wicked"(EZK.33:11). No Christian can find joy in the contemplation of the final abode of the impenitent. However, it is our duty as faithful ministers of Jesus Christ to proclaim the whole counsel of God. I believe I would be a false friend to any sinner if I did not warn him, as the Scriptures repeatedly do, of the danger of his condition.
It is a well-known fact that people suppress what they hate and fear. Consequently there are numerous persons who, instead of seriously considering the matter of hell, simply castigate the one who brings it to their attention. Though a minister may have half a dozen degrees, he is still railed upon as an obscurantist who is to be ignored lf he preaches on the subject. I have found that the arguments of un believers consists of one thing: emotionalism, displayed in an outburst of hostility and unwillingness to consider rationally a matter of the greatest importance to their eternal well-being.

나는 왜 지옥을 믿는가? 이 세상의 어떤 주제도 이 주제만큼 인간의 마음에 증오스러운 주제는 없다. 그러나 어떤 주제도 이 주제만큼 중요한 주제는 없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각 하셨을 때 눈물을 흘리셨다. 하나님 자신께서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33:11)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떤 그리스도인도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의 최종의 거처(지옥)를 생각할 때 기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선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일꾼(사역자)이 된 우리들의 사명(의무)이다.  내가 어떤 죄인에게, 성경이 되풀이하여 기록한대로, 그의 최후의 처지의 위험(지옥)에 대하여 그에게 경고하여 피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에게 그릇된(가짜의)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감추고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지옥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대신에, 다만 그들로 하여금 지옥문제에 주목하게 하는 사람을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어떤 사역자(목회자)가 학위가 여섯 개나 된다 하더라도, 그가 그 주제(지옥)에 관하여 설교를 한다면 역시 무시당할 몽매주의자로서 조롱받는다. 나는 불신자들의 주장들이 한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주정주의(主情主義) 이다. 즉 적의의 폭발과 그들의 영원한 행복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역자 해설: 주정주의란, 정신 생활에서 이성이나 지성보다 감정이나 정서를 중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Some people seem to be under the delusion that hell has evaporated, or at least that all intelligent people have stopped believing in it. Before continuing in any such ideas, I ask you to consider these words of great Princeton theologian, A. Hodge: "The Old Testament was in the hands of the Jews centuries before Christ came. They uniformly understood Scriptures as teaching that the wicked are to suffer forever." The historian Josephus declares that this was also the understanding of the Pharisees of his time. As Christians we have had Scriptures for almost twenty centuries. We read that "all the great church fathers, Reformers, and historical churches, with their recensions and translations of the Sacred Scriptures, their liturgies and hymns; all the great evangelical theologians and biblical scholars, with their grammars, dictionaries, commentaries and classical systems, have uniformly agreed in their understanding of the teaching of the Sacred Scriptures as to the endlessness of the future sufferings of all who die impenitent. And this has come to pass against the universal and impetuous current of human fears and sympathies."

어떤 사람들은 지옥은 증발했거나, 또는 적어도 모든 똑똑한 사람들은 지옥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기 전에, 나는 그대들에게 프린스톤 대학교의  위대한 신학자인 하지 교수의 다음 말들을 생각해보기를 요청한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여러 세기 전에 이미 유태인의 손안에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 성경이 악인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것은 또한 그의 시대의 바리새인들의 이해(지식)였다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의 20세기 동안 성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쓴 글을 읽고 있다.
"모든 위대한 교회 창시자들,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성경책들의 교정판들과 번역본, 그들의 기도서들과 찬미가들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교회들; 그들의 문법서들, 사전들, 주석서들과 고전학설을 갖고 있는 모든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성서학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장래의 고통이 무한하다는 것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한결같이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공포와 동정심이라는 보편적이고 충동적인 경향과 반목하게 되었다."

The Bible tells us that the unbeliever will go into endless punishment. Is that contrary to what any rational, right-thinking person would conclude from what we know as natural theology, that is, in God's revelation of himself to us in this world, in the moral government of it, in our own constitution, and nature? By no means! Joseph Stiles points out to us that the laws of our nature demand that  there be a hell: "Fix your eye upon the very vilest sinner upon earth. Through death, this instant, pass him up 세 Heaven - with all his lusts, and lies, and hate, and devilish heart - can he be happy there? By a law of his nature, happiness lies in a correspondence between the mind and its subject. By another law of his nature, misery lies in the opposition between the mind and its object. This unholy heart feels, and must ever feel, the deepest aversion to everything that exists or transpires in holy Heaven."
Our own moral nature requires such a place as hell. The human conscience also demands it. All men feel that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virtue and vice and that in character these are moral opposites. And always we treat them as such: we approve virtue and condemn vice. We reward virtue to promote it, and punish vice to suppress it. This is also true in all moral governments of any moral nation - laws have been passed because people know that virtue leads to happiness of the community.

성경은 불신자는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르게 생각하는 이성적(합리적)인 어떤 사람이 우리가 자연신학으로 아는 것, 즉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 이 세상이 도덕적으로 지배된다는 것, 우리자신의 체질, 그리고 자연에서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부터 끌어 낼 결론과 상반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조셉 스타일스는 우리의 본성의 법칙들이 지옥이 있는 것을 요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대의 시선을 지상에서 가장 사악한 죄인에게 멈추어라. 바로 이 순간, 죽음으로, 그의 모든 육신의 욕망, 그리고 속임, 그리고 증오, 그리고  악마 같은 마음을 가진 채 천국에 올려 보내라, 그러면 그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의 본성의 법칙에 의하여, 행복은 마음(정신)과 그것의 자아(自我, subject)가 일치하는데 있다. 그의 다른 본성의  법칙에 의하여 고통은 마음(정신)과 그것의 객아(客我, object)사이의 대립에 있다. 이 부정(不淨)한 마음은 거룩한 천국에서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모든 것에 가장 깊은 싫증을 느낀다, 그리고 언제나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자신의 도덕적 본성은 지옥과 같은 장소를 요구한다. 인간의 양심도 그것을 요구한다. 모든 인간은 선과 악간에는 차별이 있고, 특성상 이들(선과 악)은 도덕적 상반성(相反性)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선과 악은 항상 상반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다룬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칭찬하고 악을 정죄한다.  따라서 우리는 선을 조장하기 위하여 선행은 포상(褒賞)하고,
악행은 억제하기 위하여 처벌한다.[역자해설: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의미한다.]
또 이것은 어떤 도덕적 국가에 있어서의 모든 도덕적 통치에서도 사실(진실)이다-즉 그 공동체의 법률들은 사람들이 선(덕)이 그 공동사회를 행복에로 이르게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통과되었다.

We see another argument from the life of Jesus Christ and his character. Christ, who came meek and mild to save us from pain and suffering, was the One who talked more about hell than any other person in Scripture. Did this One who is truth incarnate, who is the Holy  Son of God, come to implant in the minds of men a fear which would last for over nineteen centuries of something that is nonexistent? Such a thought is a great smear upon the character of Jesus Christ. Some people say: "But God is love! And God will never punish anyone in hell." It is very dangerous to erect a doctrine on an inaccurate premise. Indeed the Bible does teach us that God is love, infinitely compassionate love. But the same Bible teaches us that the same God is holy and just and righteous; that he is of purer eyes than to look upon iniquity and that he will visit our transgressions with the rod and our iniquity with stripes; that he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Long before the love of God was fully manifested in the Scripture, the one great thought inculcated in the minds of the Hebrew people was: "Holy, Holy, Holy, is the Lord of Hosts"(Isa. 6:3). The very foundation of his throne was holiness, and no sin would ever come into his presence without his inevitably consuming it with his wrath.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의 인격(특성)으로부터 또 다른 논거를 알 수 있다. 우리를 고통과 재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온유하신 분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지옥에 관하여 말씀하셨던 분이셨다.
성육신 하신(사람이 되신) 진리이신 이 분,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신 이 분이 19세기 이상 동안 계속될, 존재하지 않은 것의 공포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으셨는가? 그러한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큰 오점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지옥의  벌을  주시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부정확한 전제에서 어떤 교리를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 하다.  참으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무한히 동정적인 사랑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같은 성경은 그 같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정하시고 의롭다는 것, 하나님은 그 눈이 매우 깨끗하셔서 악을 바라보시지 못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를 막대기로, 우리의 불법을 회초리로 벌하시리라는 것; 하나님은 죄인들을 결코 결백하다고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표명되기 오래 전에(구약시대에), 히브리사람들의 정신 속에 강권되었던 한 가지 위대한 사상은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보좌의 진정한 기초는 성결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로써 반드시 죄는 태워버려져서 어떤 죄도 하나님의 존전(임재)에 들어 갈 수 없을 것이다.

There are those who would have us believe that they know something about God that we do not know, and therefore this could not be the case. The Universalist declares that God, in his love, must inevitably receive everyone. This person would boldly approach the Almighty and throw a wing of condescension over the weakness of the Omnipotent God by telling us that  God does not quite understand himself and surely does not mean what he says and actually is gravely mistaken about this matter. This person thinks he knows more about God than God knows about himself. Here is the blasphemer who would declare that God is some sort of blustering fool who says what he does not mean; that although throughout all of revelation, God declared that the wicked shall die in their sins and not find peace, he now has reversed himself. This man does not realize that the Scripture says that God's ways are not our ways and his thoughts are not our thoughts (Isa. 5:8); that his ways and thoughts are past finding out(Rom. 11:33). Nevertheless, this blasphemer confidently declares that God's ways are our ways and his thoughts are thoughts, and that he has fully found out God's ways. This man would bring upon himself the exclamation of God who has said, in effect, "Mortal, thou  supposest that I was altogether such a one as thou art"(Ps. 50:21) He is the Holy God, who has declared that he will not countenance sin. The impenitent thrust themselves into his presence with great folly and with endless consequences.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을 자신들이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것(지옥)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보편구제설 주장자는 하나님은 그 분의 사랑으로 인하여 반드시(불가피하게) 모든 사람을 영접(구원)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람은 뻔뻔스럽게 전능자에게 다가와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말한 것은 진심으로 말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하여 중대하게 오해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점 위에 교만한 겸양의 날개를 드리운다.[역자해설: 이 글은 마치 하나님의 약점을 두둔해주는, 즉 은혜를 입히는 듯한, (보편구제설 주장자  등의) 교만한 태도를 은유하고 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그 자신을 아시는 것보다 그가 하나님에 관하여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날(Here), 하나님은 진심이 아닌 말을 하는, 좀 날뛰는 어떤 종류의 바보라고 선언하고자 하는 신성 모독자(神性 冒瀆者)가 있다. 즉 창세기에서 끝가지, 성경(revelation)전체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은 그들의 죄로 죽을 것이고 평안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지금 스스로 파기(취소)했다고 선언하고자하는 신성 모독자가 있다.  이 사람은 성경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8) 라고 말한 것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라고 말한 것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독자는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이고, 그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모독자)는 하나님의 길을 완전히 찾았다고 자신 있게 선언한다.  이 사람은 사실상, "인간아(Mortal),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시50:21)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선언을 자기 자신에게 불러온다.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죄를 찬성하시지 않으실 것을 선언하셨다.
죄를 뉘우치지 않는 완고한 자들은 큰 어리석음과 영벌(永罰, 지옥 벌)을 지닌 채 자신들을 하나님의 존전(尊前)에 밀어 넣는다.

Others have said, "Surely our sins would not deserve such a thing as endless punishment." Again, let me quote Hodge, the great theologian of Princeton: "We are ourselves the malefactors. It is self-evident that self-interest, that moral blindness and callousness, forever render every criminal an utterly incompetent judge of the measure of guilt attaching to his own wrong-doing. All experience proves this in criminal jurisprudence and in private life. If this be true when we judge of the heinousness of our offenses against our fellow-men, how much more must it vitiate our judgements as to the heinousness of our sins against the infinitely holy God!"
Another author has said to us that the end of punishment for our sins must be when the influence of these sins ceases. But if the influence of men's sins live through all time, then men are accountable for those influences through all time. Man cannot but be punished in proportion to his guilt until time be no more. Jesus made it very clear that every human being upon this earth either gathers men and women, boys and girls unto himself or scatters them abroad. Unbelievers, having spent their whole lives scattering people away from Jesus Christ, will be partly responsible for many of those people ending up in hell.

또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의 죄는 영벌(永罰)같은 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신학자인 프린스톤 대학교의 하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자.
"우리 자신들은 악인들이다. 도덕적 맹목과 냉담인 사욕(이기심)이, 영원히 모든 범죄자를 자기 비행(非行)에 결부되는 죄의 분량을 판단하는 데, 완전히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역자해설: 모든 사람의 이기심(利己心)은 자기의 죄에 대하여는 눈멀고 냉담하고, 남의 죄는 잘 판단한다는 뜻이다.)  
형사법률(刑事法律)의 차원에서 그리고 사생활(私生活)의 차원에서의 모든 경험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한 우리의 범죄의 흉악함을 우리가 판단할 때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물며 그것(이기심)은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죄의 흉악함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얼마나 더 그릇 치게 할 것인가? (역자해설: 보이지 않는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범죄는 판단조차도 못하는 것 같다. 즉 죄의식도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저자는 우리의 죄들에 대한 형벌의 끝(종말)은 이 죄들의 세력(영향력)이 끝날 때(즉 이 죄들의 세력이 소멸 될 때)일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의 죄의 세력이 영원히(계속) 살아 있다면, 사람들은 영원히(계속) 이 죄들의 세력(영향력)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인간은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의 죄에 비례하여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은 남자들과 여자들, 소년들과 소녀들을 그 자신(예수님)에게로 모으거나 그들을 밖으로 내쫓는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했다. 불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람들을 흩어버리면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사람들 가운데의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The Scriptures state that if the effects of our sins are everlasting then the punishment for our sins will also be everlasting. The main reason we believe in hell is because Jesus Christ declares that it is so. We are told that the sinner dwells in "everlasting burnings"(Isa. 33:14), yet "shall never see light"(Ps. 49:19); is "utterly consumed"(Ps. 73:19), yet "the fire is not quenched"; is everlastingly "dead"(Isa. 26:14), the "worm [in him] dieth not"(Ma가 9:44), is torn "in pieces while there is none to deliver (Ps. 7:2); when he calls, he is never answered; when he seeks he never finds. In a word, he sinks to a death beyond prayer, a condemnation beyond forgiveness, and a doom beyond the reach of Christ.
The Hebrew word used in the Old Testament to mean "eternal" is olam, along with its cognates and derivatives. In the New Testament the parallel word is the Greek aion, aionios, and all of its various cognates, derived from aei meaning "always." One author has stated  that every Hebrew and Greek word which is used to describe the eternality of the existence of God and the eternality of the blessedness of the redeemed in heaven is also used to describe the eternality of the sufferings of the lost in hell. If the punishment of the wicked is temporal, then there will come a day when God will be extinct, because the same terms are used. If these terms do not describe eternity then there is no word in the Hebrew or Greek language which does mean eternity - and this is impossible. Every word that could possibly be used is used.

  성경은 만일 우리의 죄의 결과(효력)가 영속(永續)한다면 우리의 죄의 벌(罰)도 영속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지옥을 믿는 주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이 있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죄인은 "영원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고(사33:14),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라"(시49:19); 그들은 "...놀람으로 전멸하고..."(시73:19), 그러나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8)"; 그들은 "영원히 죽고"(사26:14),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막9:44,48), "..산산히 찢어지고 건져낼 자 없으며..."(시7:2); 그(죄인)가 불러도, 그는 절대로 대답을 받지 못하고, 그가 찾아도 그는 절대로 찾지 못한다고 우리는 듣고 있다.
한 마디로(요컨대), 그는 기도가 소용없는 죽음에 빠지고, 용서를 받지 못하는 저주에 떨어지고, 그리스도의 손이 닿지 못하는 심판(파멸)을 맞는다.
구약성경에서 "영원(eternal)"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히브리말은, 오람(olam)이며, 이 단어에는 여러 동족어와 파생어가 있다. 신약성경에서 이에 해당하는(서로 같은) 말은 "항상(always)"을 의미하는 희랍어 아에이(aei)에서 파생한 아이온(aion), 아이오니오스(aionios), 그리고 그것의 다양한 모든 동족어들이다.
한 저술가는 하나님의 존재의 영원함(eternality)과 하늘에 있는 구속 된 자들의 축복의 영원함을 기술(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히브리어와 희랍어는 또한 지옥에 있는 죄인(버려진 자)들의 고통의 영원함을 기술하기 위하여 사용된다고 진술했다.
악인의 벌(罰)이 일시적이라면, 하나님은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용어들이 영원을 묘사하지 않는다면 히브리말과 희랍어에는 영원을 의미하는 말이 없다 - 그런데 이것은 있을 수 없다. 아마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단어가 사용될 것이다.

It would be well for us to consider for a moment the eternality of our souls which shall dwell either in the bliss and felicity of Paradise or in the well-deserved punishment of hell.
How long will that be? William Munsey describes to us something of the meaning of eternity, something which so often men thrust from their minds: "Eternity cannot be defined. Beginningless and endless it cannot be measured - its past increased, its future diminished. It has no past, it has no future, it has no ends, it has no middle, it has no parts - an unanalyzable, tremendous unity. If all the mountains of all the worlds were pressing upon the brain, they could not weigh it down more heavily than eternity's least conception.......It is unoriginated, beginningless, endless, measureless, imperishable, indescribable, undefinable thing. Itself is its only definition. If asked, What is eternity? we can only answer 'Eternity,' and in our answer confess our weakness and folly." It is an infinite circle which can never be measured.
We might conceivably measure the circle of of the earth or the circle of our galaxy, or even conceivably the circle of the universe, the great ecliptic that covers the vast spawnings of galaxies around the world. Says Munsey: "Mount Phoebus' solar car, and seat yourself beside the driver, and search for the end of the ecliptic. Lay on the burning whip, and see the fiery-maned and foot-winged steeds dash through the constellation  - admiring worlds standing out of your tracks, and space's abysms gaping beneath you; and drive on till the wheels of your car shall shiver, and their worn-out axles break, and the over-driven horses die, and you are lost where no angel will find your bones - and you will find no end to the ethereal circle. But these circles are finite.

우리가 낙원(천국)의 행복과 경사 속에서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받아야할 지옥에서 살아야할 우리의 영혼의 영원함을 잠시동안 숙고해 보는 것은 유익할 것 같다. 그것은 얼마나 될까?
윌리암 먼시는 종종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서 밀쳐내는 말인, 영원의 의미에 관한 한 가지 표현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영원은 정의 될 수 없다, 영원은 시작이 없고 끝이 없어서 측정될 수 없다 - 영원의 과거는 증가될 수 없고 영원의 미래는 줄어들 수 없다. 영원은 과거가 없다, 영원은 미래가 없다, 영원은 끝이 없다, 영원은 중간이 없다, 영원은 부분도 없다 - 분석할 수 없는, 놀라운 통일체이다. 만일 온 세계의 모든 산들이 인간의 두뇌(頭腦)를 내려 누른다해도, 그 모든 산들은 영원의 가장 적은 개념보다 더 무겁게 그 두뇌를 내려 누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영원)은 기원이 없고, 시작이 없고, 끝이 없고, 측량할 수 없고, 불멸이고, 형언할 수 없고, 정의 할 수 없는 것이다. 영원이란 말 자체가 영원의 유일한 정의이다. '영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오직 '영원'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우리의 대답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영원은 결코 측정될 수 없는 무한한 하나의 원이다.
상상컨대 우리는 지구의 원주나, 은하계의 둘레를 측정할 수 있거나, 혹은 생각할 수 있는 바로는 우리 세계의 주위에 있는 거대한 모든 은하계의 별무리들을 망라하고 있는 거대한 황도(黃道)인 우주의 둘레조차도 측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먼시는 다음같이 말했다.
"아폴로 신(태양신)의 태양 차에 올라타라, 그리고 그대자신은 조종사 옆에 착석하라, 그리고  황도(우주)의 끝을 탐색하라. 불 채찍을 준비하라, 그리고 불 갈기가 있고 발 날개가 있는 말이 성좌(星座)를 통하여 돌진하는 것을 보라 - 그때 그대의 궤도 밖에 있는 세계들, 그리고 그대 아래 입을 벌리고 있는 우주공간의 심연(深淵)을 감탄하면서.  그리고 태양 차의 바퀴들이 떨리고, 그들의 낡은 굴대들이 부셔지고, 혹사당한 말들이 죽을 때까지, 그리고 어떤 천사도 그대의 뼈들도 발견하지 못할 곳에서 그대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달려라. - 그러나 그대는 하늘의 원주의 어떤 끝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둘레들은 유한하다."고.

Eternity is an infinite circle. Because it is infinite its center is the great imponderable, portentous "now." "Now" is an infinite circle whose center is everywhere within the compass of that circle. This is  boggling to the mind, since it has no circumference and its center is everywhere. "Eternity," says Munsey, "is an infinite line. The strongest winged angel who cleaves the illimitable ether may track it, and track it forever, yet he can no more find its end than he can find the cradle or tomb of God....... It is a day without a morning, a day without an evening - an eternal noon. It was just noon when the world was made, it will be just noon when the world is destroyed - high noon forever. O Eternity! The idea deepens, widens, and towers, till the human mind, confounded and crushed, shrinks into infinite littleness." Forever and ever and ever. When you have been in hell a hundred billion, trillion eons of centuries, you will not have one less second to be there - to be lost forever. You will be n utter darkness, fleeing this way and that with never another mortal soul to converse with, with never an angel to cross your track, turning this way and that, up and down one plane in every way, forever and ever - lost, lost, shrieking out, lost, forever and ever, where no echoes will ever mock your misery. Immortal soul, lost in an infinite darkness, flying on and on in a journey that will only end when you will come to fold your wings upon the gravestone of God forever.

영원은 무한한 원이다. 그것은 무한하기 때문에 영원의 중심은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하고, 놀라운(이상한) "지금"이다. "지금"은 원의 중심이 그 원의 범위 안의 도처에 있는 하나의 무한한 원이다.  이것은 마음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원은 원주선(圓周線)을 갖고 있지 아니하고, 그 원의 중심은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먼시는 다음같이 말했다.
"영원은 하나의 무한한 선(線)이다. 광대한 창공을 헤치고 날아가는 가장 강한 날개를 가진 천사가 그 무한한 선을 추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을
영원히 추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천사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요람이나 무덤을 찾을 수 없는 것같이 그 무한한 선의 끝을 찾지 못할 것이다....  영원(무한한 선)은 아침 없는 하루이다, 저녁 없는 하루이다 - 영원한 정오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의 정오였다, 그것은 바로 세상이 파괴되었을 때의 정오일 것이다 - 영원히 대낮이다(영원한 대낮이다).
오 영원이여!  인간의 마음이 깨트려지고 부셔져서 무한한 극소량으로 움츠려 지기까지, 그 개념은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진다."고.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영원히.  너는 지옥에 천 억, 억겁의 세기를 있다할지라도, 너는 거기에 있는 시간이 일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 영원히 버려질 것이다.
너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있을 것이다. 같이 얘기할 다른 인간이 전혀 없고, 너의 길에 마주치는 천사도 전혀 없는 어둠 속에서 여기저기 도망 다닐 것이며, 이리로 저리로 돌면서, 한 바닥에서 사방으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영원히 - 버려지고, 버려져서, 비명을 지르고, 버려지고, 영원히, 여기서는 어떠한 메아리도 너의 비참을 조롱하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어둠 속에 버려져, 쉬지 않고 날아 오르면서, 하나님의 묘비 위에 너의 날개를 접게 될 때에만 끝날 여행을 계속할 불멸의 영혼, 곧 영원히.

Where will you spend forever? Though the Scripture declares it in a thousand places, and Jesus boldly asseverated that it was true, there may be some who still do not believe in hell. I have heard the testimony of a man who went to hell. He is a living man, and his testimony is on tape. He has given me his permission to use it in any way that I wish. He described himself as an atheist. He believed neither in soul nor spirit nor angel nor God. "When you are dead," he said, "you are dead like a dog."  One day he planned to crawl into a hole and pull the top in over him. He did not believe in heaven or hell or God. But then he did, in a very enlightening day - he died!
Not long ago he had a cardiac arrest, and the doctors pronounced him clinically dead. (In the last year or so numerous scientists have reported on over 500 people who have been pronounced clinically dead and have been resuscitated. Whatever that means, we may not wholly know, but the reports that they bring back have convinced scientists that there is life beyond death.) Later he was resuscitated, but he told me that during his "death" he experienced the following: He sank into a realm of darkness, a place of dark shadows - yet still he had body. He found himself in great agony pushing a huge stone into a pit.(The Bible speaks of a pit.) He was in great pain and there was nothing he could do to diminish it.

그대는 어디에서 영원히 지낼 것인가? 비록 성경이 천 곳에서 그것을 선언하고, 예수께서 뚜렷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증언하셨지만, 여전히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지옥에 갔던 사람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간증은 녹음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다. 그는 그 녹음테이프를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는 그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말했다. 그는 혼도 영도 천사도 하나님도 믿지 않았다. 그는, "그대가 죽으면, 그대는 개가 죽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그는 구덩이 안에 들어가서 자기위로 뚜껑을 끌어 덮으려고 했다. 그는 천국도 지옥도 하나님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매우 교화적인 방법으로 믿었다 - 그는 죽었다!
얼마 전에 그는 심장마비(심장정지)를 당했다, 그래서 의사들은 그에게 임상적으로 죽었다고 선언했다. [지난 일 년 정도의 기간에 다수의 과학자들이 임상적으로 사망이 선언되었다가 소생되었던 오 백 명 이상의 사람들에 관한 보고를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완전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 가져온 보고들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사후의 생명(삶)이 있다는 것을 믿게 했다.]
나중에 그는 살아났다. 그리고  그는 그가 죽은  동안 그가 경험했던 다음 같은 얘기를 나에게 말했다.  
그는 어떤 흑암(黑暗)의 장소인, 어둠의 세계에로 빠졌다 -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몸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구덩이(a pit, 성경은 무저갱 또는 음부라고 말함, 눅8:31, 계20:3, 롬10:7)에 큰 바위를 밀어 넣으면서 큰 고통 속에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큰 고통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을 덜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If you got shot in the arm," he said, "you could at least grab your arm and get some slight lessening of pain, but not so with this."
I asked, "where was it? Was it localized?"
His answer was, "No, it was everywhere. I am quite certain that if I had cut my throat I would not have lessened that pain at all."
when I questioned how severe the pain was, he said, "It was worse than anything I have ever experienced in this world."
I thought perhaps he had never known much pain. I asked, "Have you ever really suffered any pain in this world?"
He said, "Well, when I was nine years old a freight train ran over my leg and left it hanging by a tension. Somehow I picked it up, dragged myself to a crossing, and was finally picked up by a man in a car. I never passed out but my blood squirted all over his windshield as he drove me to a hospital. I was never unconscious."
"How did that pain compare to the time when the doctor said you were dead?" I asked.
"It was insignificant," he answered. "I wouldn't even compare it."
I told him, "I once burned my hand rather severely and experienced a pain unlike anything I have ever known before or since. Did you ever burn yourself?"
He said, "Yes, I knocked a can of gasoline off a shelf over a candle onto my leg and set my remaining leg on fire. As a result I spent  several weeks in the hospital." He raised his pants leg and showed me the scars.
I said, "I know of nothing in this world that compares to the pain of burning. How did the pain you experienced when you died compare with that?"

그는  "그대가 만일 팔에 주사(침)를 맞았다면, 그대는 적어도 그대의 팔을 움켜잡아서 약간 정도의 고통의 완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네."라고 말했다. 나는 "어디에 고통이 있었는가? 그 고통이 어느 국소(신체의 한 부분)에 있었는가?" 라고 물었다. 그는 " 아니요, 그것은 온 몸이었지요. 내가 나의 목을 베었다할지라도 나는 그 고통을 조금도 줄이지 못했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물었을 때 그는 "내가 이 세상에서 이제껏 겪었던 어떤 고통보다 더 심했소."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마도 심한 고통을 결코 겪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은 이 세상에서 실제로 어떤 고통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글쎄요,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어떤 화물열차가 나의 한쪽 다리를 들이받아서 그 다리가 겨우 뼈 심줄(아킬레스 건)에 의하여 달려 있었습니다. 어떻든 나는 그 다리를 잡고, 건널목까지 내 몸을 질질 끌고 갔지요, 그리고 마침내 어떤 사람의 차에 태워졌습니다. 나는 전혀 의식을 잃지 않았지만 그분(차에 태워 주신 분)이 나를 병원에 실어 가는 동안 그의 자동차 유리 위에 온통 나의 피가 분출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고통은 의사가 당신이 죽었다고 말했을 때에 비교하면 어떻던가?"라고 나는 물었다. (역자해설: 아홉 살 때의 열차사고 때의 고통과 임상적으로 죽었을 때의 고통의 비교를 말한다.)
그 사람은 "그 고통(열차사고시의 고통)은 대수롭지 않지요, 나는 그것을 비교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나는 한번 나의 손에 좀 심한 화상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그 화상 전이나 후에도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것 같은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몸에 화상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같이 말했다. "네, 나는 나의 한 쪽 다리 위 편에 있는 촛불 위의 선반에서 한 통의 가솔린(휘발유)이 떨어뜨려서 나의 나머지 다리에 불이 붙게 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는 수 주일동안 병원에 입원했습니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나에게 화상(火傷)의 흉터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화상의 고통에 비교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었었을 때 당신이 경험했던 그 고통은 그 화상과  어떻게 비교합니까?"라고 말했다.

He answered, "It was one hundred times worse than when my leg was on fire! I tried every way I knew to explain that away, but everything dissolved before my attempts to do it. I did not believe in hell before and I did not want to believe in it then. On the face of this earth, no matter what you did to me, I don't think you could experience the pain that I experienced in that hospital."
I asked, " What do you think that was?"
"Why, I feel that it definitely had to be something other than on this earth, so the only place I can think of is that there must bea hell, and I was init." He told me that when he thought about that after he got out of the hospital, he began to tremble with a uncontrollable trembling.
Hell is real! He believed it did not exist at all, just as some who are reading this believe. He thought it was a myth. He did not believe Christ. He did not believe God, he did not believe the Bible. But he died, and he believes it now!  
Tragically, some will only believe it when they experience it - when it will be to late.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것은 나의 다리가 화상을 입었을 때보다 천 배나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그 고통을 잘 설명하기 위하여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방법이 설명하려는 나의 시도보다 앞서 무산되었습니다. 나는 전에 지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지옥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지상에서, 당신이 나에게 아무리 무엇을 했을지라도, 나는 내가 그 병원에서 겪었던 고통(죽었을 때의 지옥의 고통)을 당신이 경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나는 " 당신은 그것이 무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다음같이 말했다.)
"글쎄요, 내 생각에는 그 고통은 분명히 이 세상 밖의 어떤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지옥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라고.
그 사람은 그가 그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지옥에 갔던 사실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전율로 떨기 시작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지옥은 실재한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들이 지옥이 없다고 믿는 것처럼, 그 사람도 지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사람은 지옥은 하나의 신화(꾸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아 난 후)지금 그는 지옥을 믿고 있다!

슬프게도,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지옥을 경험할 때에만 지옥을 믿을 것이다 - 그때는 시간이 너무 늦을 때이다(즉 아주 죽어서 다시 돌아 올 수 없기 때문이다.)

If the Bible teaches anything at all, it is that there is an everlasting too late - that there will come a moment when it will be eternally too late, when the door of grace will have slammed shut forever. Then the sinner would give the universe itself for just one minute to repent and turn to Jesus Christ.
I believe there is a hell because Jesus Christ not only taught it, he experienced it. We read in the Scripture that on the cross of Calvary, Christ took upon himself the sin of the world; he was made sin for us, and our guilt was imputed to him. God the Father looked down upon his beloved Son whom he had loved everlastingly, in whom he was well pleased, and saw him as the Lamb of God that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And God poured out the cauldron of his wrath against sin itself and it all poured out upon Jesus Christ who cried, "My God, My God, why hast thou forsaken me?"(Matt. 27:46), and then descended into hell.

대관절 성경이 무언가를 가르친다면, 그것은 영원한 지각(遲刻, too late)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은혜의 문은 영원히 탕 닫혀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죄인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올 단 일분을 얻기 위해 우주자체를 바치려고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지옥을 경험하셨기 때문에 나는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자신 위에 세상의 죄를 지우셨다는 것; 그래서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죄는 그 분에게 씌워졌다는 것을 성경에서 읽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버지께서 영원히 사랑해 오셨고, 기뻐하셨던(만족스러워하셨던)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냉대하셨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가마솥을 쏟아 부으셨다, 그리고 그 가마솥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7)라고 부르짖었던 예수 그리스도 위에 모두 퍼부었다. 그리고 그때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In that darkness at noon Christ suffered an infinite penalty there upon the cross in our place. He said, ""It is finished. It is paid." Those who will trust in him can hear his words that the wages of him, though it is death, is paid forever by Christ. And those who place their trust in him have his word that they will never perish. The truth of Scripture is that the anger and wrath of God will one day fall upon our sins. The only question is: will it fall upon us in hell forever? Or will it fall upon Jesus Christ upon the cross? That choice is ours to make. We will live forever - somewhere!

하늘이 캄캄해진 대낮의 그 어둠 속에서(참고 마27:45)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에 갈보리의 그 십자가 위에서 무한히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 이루었다. 다 갚았다."(참고 요19:30)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사실 그것은 죽음이지만, 죄의 삯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원히 갚아졌다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이 절대로 멸망치 않을 것이라는 그 분의 말씀을 갖는다.(참고 요3:16) 성경의 진리는 하나님의 노여움과 진노는 어느 날 우리들의 죄들 위에 들이덮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질문은: "그것이 지옥에서 우리에게 영원히 덮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덮칠 것인가?" 이다.  그 선택은 우리가 내릴 선택이다. (즉 그 선택은 우리 자신들의 믿음에 의하여 우리자신들이 만드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다 - 두 곳 중 어딘가에서(천국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서.)

부기: 제임스 케네디 박사(Dr.D.James Kennedy) 소개

이 글의 원문은 1980년대에, 미국 플로리다 포트 라우더데일 코럴리지 장로교회(the Coral Ridge Presbyterian Church in Fort lauderale, Florida, U.S.A.)에서 시무 하셨던 제임스 케네디 박사가 "내가 지옥을 믿는 이유(Why I Believe in Hell)"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메시지이다.
그리고 제임스 케네디 박사는 높은 지성과 깊은 영성을 겸비한, 세계적인 위대한 목회자요, 신학자로서, 전 세계 50 여 개 국가에서 복음전도를 위한 평신도 훈련을 하고 있는 국제 전도폭발단체를 설립하고 총재를 역임했으며, 또 그는 웨스트민스터 아카데미라는 학교를 세웠고, 청년들을 훈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하여 WAFG라는 복음 방송국을 세웠다. 그 외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도용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는 "전도 폭발(Evangelism Explosion)"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저술했다.  (옮긴이: 관동대학교 명예교수 심 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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