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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독교를 믿는 이유 2005-11-07 15:27:47, 조회 : 3,245, 추천 : 353

내가 기독교를 믿는 이유
Why I believe in Christianity                                          

  본문의 요지
기독교는 죄로 죽은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하여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복음의 종교이다(요3:16). 그러나 기독교는 영원의 차원에서의 인간의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이 지상의 인류 역사에도 유익한 선과 자선의 원천이 되고, 진리(도덕)의 광명이 되고 있다. 만일 이 세상에 기독교가 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사회는 아직도 고대의 야만적 문화수준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탄생함으로써, 고대의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여자들과 아이들의 인권이 존중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한 대중교육시설(학교시스템)이 생겨나고, 과학이 발전하고, 버려진 자들을 구조하기 위한 수많은 자선시설이 기독교의 교회들과 선교회들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본문은 밝히고 있다.

성경요절: Therefore if any man be in Christ, he is a new creature:
old things are passed away; behold, all things are become new.(2cor.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I do not believe that it is enough merely to believe in Christ and the Bible. It is also necessary that we believe that Christianity has been a boon to mankind, that it has had a beneficent effect upon the human race. That opinion is not held by everyone. The redoubtable Madalyn Murray O'Hair, for example, has said that nothing good has ever come from Christianity. If Christianity has not done good and produced good, then we must reject it regardless of anything else. Even Christ taught: "By their fruits ye shall know them"(Matt. 7:16 ASV).
What are the facts and the fruits of the Christian faith? Christianity teaches that the human race is depraved, fallen, and sinful, and that even the greatest of saints is still impure and sinful. First of all, then, we should keep in mind that 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 and there has never been a perfect reflection of Jesus Christ in the life of any of his followers.

나는 단지 그리스도와 성경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가 인류에게 은혜(행복)이었다는 것, 기독교는 인류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그 의견은 모든 사람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지는 않다. 예컨대, 무서운 오헤어(M.M. O'Hair)는 어떤 선한 것도 기독교에서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만일 기독교가 선을 행하지 않고 선을 생산하지 않았다면, 그 외 다른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기독교를 거부해야한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마7:16"라고 가르쳤다.
기독교신앙의 사실들과 열매들은 무엇인가? 기독교는 인류는 악하게되었고, 타락하였고, 사악하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가장 위대한 성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순결하지 못하고 죄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질그릇 속에 이 보배를 갖고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누구의 삶에서도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반영을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Second, we must remember that Christianity has often been blamed for things that true Christians did not do, and that everyone who professes does not necessarily possess what he professes. For example, perhaps the darkest blotch and accusation that could be brought against Christianity would be the Spanish Inquisition. I would not endeavor to defend it. It was deplorable in the highest degree, a monstrous epic of brutality and barbarity. It was diabolical in its nature.
Was this Christians persecuting non-Christians? It was the very opposite. I am quite convinced that the members of the Inquisitorial Party were not Christians. They lived in the Dark Ages when the Gospel of Jesus Christ had been all but totally forgotten and the faith so perverted that it bore little resemblance to that which had been given by Christ. In many cases the victims of the Inquisition were evangelical Protestant Christians who had come to realize what the historic Gospel of Christ was and who had rejected the papal superstitions of that time. These were the people who were exposed to these tremendous tortures.

두 번째로, 우리는 가끔 진실한 기독교인들이 행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하여 비난받아 왔고, 또 기독교신앙을 고백한 모든 사람이 모두 그가 고백한 것을 반드시 간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즉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은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마 기독교에 대한 반대를 일으킬 수 있었던 가장 어두운 얼룩과 혐의는 스페인의 종교재판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옹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한탄스럽고, 잔인성과 만행의 악이 극에 달한 끔직한 서사시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악마의 짓이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비 그리스도인들(non-Christians)을 박해했던가? 그것은 그 정반대였다. 나는 그 종교재판의 재판부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거의 전적으로 잊어졌고 믿음은 매우 변질되어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졌던 복음에 거의 유사성이 없었던 암흑시대에 살았다.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은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그 당시의 로마교황의 미신적 습관을 거절했던 복음주의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이 지독한 박해(고문)들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다.

The Pit and the Pendulum, a magnificent book by Edgar Allan Poe, is a picture of the Spanish inquisitors of the Roman church pouring out all of their exquisite tortures on an English Protestant. The truth about the Inquisition is that these were spurious Christians, men who were Christian in name only, persecuting those who were real. When understood, to denounce the Inquisition is not a real attack on Christianity. I am quite certain that no Christian would ever torture anyone.

에드가알란 포우(E. A. Poe)에 의하여 쓰여진, "The Pit and the Pendulum" 이란 굉장한 책 속에는 어떤 영국 개신교 인에게 그들의 모든 갖가지 절묘한 고문들을 퍼붓고 있는 로마교회 소속의 스페인 종교재판관들에 관한 그림이 있다. 종교재판관에 관한 진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이름만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들, 즉 가짜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면, 그 당시의 종교재판소를 비난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실질적 공격이 아니다.(즉 실질적으로 볼 때 그것은 그릇된 종교재판에 대한 비난이 되는 것이고, 기독교자체에 대한 비난이 될 수 없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박해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나는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What has Christianity accomplished? First, we should notice that since Christianity came into the world it has become a world force and is today almost three times the size of its nearest rival. This came about against the most staggering odds when one considers that Christianity is the proclamation of the death of a carpenter of Nazareth, who is claimed to be the divine Creator of the world. Suppose that today in the cities of Europe or America missionaries were to appear telling us that just recently some obscure peasant had been put to death in Persia and was reputed to have risen from the dead and declared to be the eternal Creator of the cosmos.

기독교는 무엇을 성취했는가? 첫째로, 우리는 기독교가 이 세상에 들어 온 이후에 기독교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세계적인 영향력이 되었다는 것과 오늘날엔 기독교에 가장 근접한 경쟁종교의 크기의 약 세 배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일반인(一般人)이 기독교는 자신이 세상의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던 나사렛의 어떤 목수의 죽음의 선포라고 생각할 때, 이런 가장 불리한 역경(the most staggering odds)에도 불구하고 일어났다.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들에서 선교사들이 나타나서 최근에 어떤 이름 없는 농부가 페르시아에서 사형되었는데, 그가 죽은 자들 중에서 살아났다고 평판이 났고, 그가 우주의 영원한 창조자라고 선언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고 상상해 보라.

What chance do you think such missionaries would have in propagating such a religion? Can you not see that the probabilities against such a faith ever taking hold would be staggering? But this is precisely what the Apostles did in the Roman Empire, and amazing as it is, they succeeded in overthrowing that pagan empire. This feat simply demonstrates that in this absurd and incredible declaration there must have been inherent some supernatural power. It was indeed the very power of the Spirit of God, who reached down and drew unto himself those whom he would by irresistible power.
그대들은 그러한 선교사들이 그러한(허무맹랑한) 종교를 전파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승산(가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신앙이 도대체 자리를 잡지 못할 확률이 압도적이라는 것(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가? 그러나 이것은 바로 사도들이 로마제국에서 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랄 일이지만, 그들은 저 불신(이교신앙)의 제국을 전복하는 일을 계속했다. 이 위업은, 이 불합리하고 믿을 수 없는 선언에는 어떤 본질적인 초자연력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었다. 하나님의 성령은 손을 내밀어서 그가 원하는 사람들을 저항할 수 없는 능력에 의하여 그 자신에게 이끌었다.

Against all the opposition and persecution that could be mustered, Christianity continued to grow and flourish. Even the attempts of Julian the Apostate to overthrow Christianity and reestablish the pagan Roman religions met with no success. One of the emperor's followers said to a Christian when Julian's onslaught against Christianity was at its highest, "What is your carpenter's son doing now?" To which the Christian replied,  "He is making a coffin for your emperor."  It was not long after this that Julian, mortally wounded in battle and falling on the ground, picked up the sand mingled with his blood, threw it into the air, and cried, "Thou hast conquered, O Galilean." And the march of Christianity surged on.

저지를 수 있었던 온갖 반대와 박해에 대하여, 기독교는 성장과 번영을 계속했다. 심지어 기독교를 타도하고 이교(우상숭배 종교)인 로마의 종교를 재건시키기 위한 배교자 율리안 황제의 모든 시도(試圖)들도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율리안 황제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은 기독교에 대한 율리안의 맹공(박해)이 최고도에 달했을 때 한 그리스도인에게 말했다."너의 목수의 자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그 기독교인은 대답했다. "그분은 지금 너의 황제를 위하여 관을 짜고 계신다"라고. 그 후 오래지 않아서, 율리안이 전투에서 부상당하여 쓸어져서, 그의 피로 섞인 모래를 움켜쥐고, 공중으로 던지며, "오 갈릴리 사람이여, 그대가 승리했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기독교의 행진은 계속 파도치며 나아갔다.

Waves of diabolical torture swept the Roman Empire in a Satan-inspired effort to purge the world of the newborn Christian faith. Yet, the blood of the martyrs became the seed of the church, and Christ continued on his way, conquering and to conquer. Soon a Christian was placed on the throne of Rome, and the mightiest empire the world had ever seen collapsed before the Gospel of the Galilean carpenter. Its ameliorating work began upon the pagan world.

악마의 박해의 파도들은 갓난 기독교신앙의 세계를 일소하기 위하여 사탄의 감동을 받은 노력으로써 로마 제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정복하면서 그리고 정복하려고, 계속 자기의 길을 가셨다.  얼마 안되어 곧 한 그리스도인이 왕위에 앉았다. 그리고 이제껏 세상이 보았던 최강의 제국은 저 갈릴리 목수의 복음 앞에 무너졌다. 로마제국의 개선의 역사(役事)가 이교(異敎)의 세계 위에 시작되었다.

Many people today who live in an ostensibly Christian environment with Christian ethics do not realize how much we owe Jesus of Nazareth. The world into which he was born was an altogether different world from ours, and, without his coming, the world would be an altogether different place from the one we know today. What goodness and mercy there is in this world has come in large measure from him.
오늘날 기독교윤리를 갖고 표면적으로 기독교적인 문화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나사렛 예수의 사랑에 빚지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그가 태어나셨던 세상은 현재의 우리들의 세상과 전연 다른 세상이었다. 그가 오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상과 전연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선(善)과 자비(慈悲)는 대부분 그분으로부터 왔다.[역자해설: 동양문화권(불교, 유교 등)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말씀드리면, 이 메시지는 특히 기독교문화권의 모든 선과 자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 드린다.]

Consider the gladiatorial fights. Hundreds of thousands of slaves shed their blood in the arena in Rome year after year to satisfy the perverted lusts of the Roman mob. One day a Christian by the name of Telemachus leaped into the arena between two armed gladiators and held them apart. At a sign from the emperor, he was pierced with their swords and fell to the ground. But by sacrificing his life he spared the lives of hundreds of thousands of others. There was no cry of glee from the crowd. They looked at this saintly man lying dead in his blood, and a silence came over that vast arena. They went out shamefacedly, and that was the end of the gladiatorial shows in Rome. Jesus Christ had given a worth and significance to every life: "Are ye not worth much more than these?"

검투사의 격투들을 생각해 보라. 수 십 만의 노예들이 로마군중들의 그릇된(변태심리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해마다 로마의 투기장(원형경기장)에서 그들의 피를 흘렸다. 어느 날 테레마쿠스(Telemachus)라는 이름의 한 그리스도인이 투기장안에 있는 무장한 두 검투사들의 사이에 뛰어들어가 그들을 떼어놓았다. 황제로부터의 신호로, 그는 그들의 칼에 찔려서 땅에 쓸어졌다. 그러나 그의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그는 수 십 만 명의 다른 사람들의 생명들을 살렸다. 군중으로부터 어떤 환성(歡聲)도 없었다. 군중들은 그의 피로 젖은 채 죽어서 누워 있는 이 거룩한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침묵이 그 거대한 경기장을 덮쳤다. 군중들은 부끄러워하며 경기장을 나갔다. 그리고 그 사건은 로마에서의 검투사의 격투 쇼우들(shows)의 마지막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생명에 가치와 의미를 주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The child of today is loved and adored. But it was not so in pre-Christian times. The Roman father's power over his child was absolute. He could expose it to death; he could scourge it, mutilate it, marry it, divorce it, sell it as a slave, or kill it to satisfy his own blood lust. Quintilian, a Roman writer, said that to kill a man was often held to be a crime, but to kill one's own children was sometimes considered a beautiful action among the Romans. Tacitus, the great Roman writer, tells us of the pathetic pictures of newborn children who were taken on the first day of their lives and left on the mountainside, exposed to wild beasts, or to those strange people who flitted around in the dark to seize these children for even more perverse and horrible destinies and death. Jesus Christ took a little child in his arms and blessed it, and infanticide melted away from the world.

오늘날의 아이들은 사랑 받고 소중히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이전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의 아이에 대한 로마의 아버지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로마의 아버지는 자기의 아이를 죽일 수 있었다. 그는 그를 징벌할 수 있었다. 신체를 절단하여 불구자를 만들 수 있었다. 그를 결혼시킬 수 있었다. 그를 이혼시킬 수 있었다. 그를 노예로 팔 수 있었다. 또는 그 자신의 유혈(流血)에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의 아이를 죽일 수 있었다. 위대한 로마의 작가인 퀸티리안(Quintilian)은 어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종종 범죄라고 판결되었으나, 로마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때로는 아름다운 행동으로 생각되었다고 말했다. 위대한 로마의 작가인 타시투스(Tacitus)는 갓 난 아이들이 그들의 생명의 첫날에 데려가서, 산기슭에 버려져서, 들짐승들이나, 훨씬 더 사악하고 끔찍한 운명과 죽음에 이 아이들을 이용하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배회하며 몰래 가져가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노출된 애처로운 갓 난 아이들의 사실(寫實)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팔에 어린 아이를 안고 그 아이를 축복하셨다. 그리고 세상에서 유아살해를 사라지게 하셨다.

What about the state of women in that day? In the heathen world the condition of women was no less dismal than that of children. Women were of very little esteem until Jesus came. The writing of the Hindus, the Brahminical writings, state that a woman is never fit for independence; women have no business with the scriptures of the Hindus; and sinful women must be as foul as falsehood itself.

그 무렵 여인들의 형편은 어떠했는가? 이교의 세계에서 여인들의 상태는 아이들의 상태보다 못지 않게 암담하였다. 여인들은 예수께서 오시기까지 천시(賤視)되었다. 힌두교의 책들인 바라문의 책들은 여인은 절대로 독립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여인들은 힌두교의 경전과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사악한 여인들은 거짓 자체처럼 불결하다(불결함에 틀림없다.)

Robert Ingersoll, a great skeptic who lectured against the Bible, had the temerity at one time to make a statement that women were better off in heathen lands than they were in Christian lands. Consider the state of women in heathen lands. The traveler Commander Cameron witnessed in the center of Africa the death of a chieftain and the usual practice that ensued. First the tribal members diverted the course of a river and in its bed dug an enormous pit, the bottom of which was then covered with living women. At one end a woman was placed on her hands and knees and upon her back was seated the dead chief, covered with beads and other treasures, being supported on either side by one of his wives, while the second wife sat at his feet. The earth was then shoveled in upon them and all the women were buried alive, with the exception of the second wife. For her, the custom was merciful, for she had the privilege of being killed before being buried. Or consider the grotesque Indian custom of suttee: whenever a husband died the woman was burned alive with the body of her husband.

성경을 반대하는 강의를 했던 대단한 회의론자였던 로버트 인거솔은 한때 여자들은 그들이 기독교인의 나라들에 있는 것보다 이교도의 나라들에서 한층 더 잘 살았다는 말을 만들 정도로 뻔뻔스러웠다. 이교도의 나라들에 있었던 여인들의 상태를 생각해 보라. 여행가 카메론대장(隊長)은 아프리카의 중심지역에서 추장(酋長)의 죽음과 뒤이어 계속된 초상(初喪)에 관한 일상의 관습을 증언했다. 먼저 부족의 구성원들이 강의 수로를 돌리고 그 바닥에 큰 구덩이를 팠다. 그 다음 바닥은 살아 있는 여인들로 덮어졌다. 한쪽 끝에는 한 여인이 손과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졌다. 그리고 그 여인의 등위에 죽은 추장이, 어느 한쪽을 그의 부인들 중의 하나에 의하여 받쳐지면서, 구슬과 보석으로 덮여서 안치(安置)되었다. 그때 둘째 부인이 그의 발치에 앉았다. 그 다음에 흙이 삽질되어 그들 위에 퍼부어졌다. 그리고 모든 여인들은 둘째 부인을 제외하고 산채로 매장되었다. 그 여인(둘째 부인)에게, 그 관습은 자비로웠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매장되기 전에 죽임을 당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는 괴상한 인도여인의 아내순사(殉死)의 풍습을 생각해 보라. 남편이 죽을 때마다 그 부인은 그 남편의 시체와 함께 산채로 매장되었다.

The condition of the slave in the ancient world was even worse. Half of the entire Roman Empire consisted of slaves. The city of Athens had four hundred thousand inhabitants; one hundred thousand of those were free and three hundred thousand were slaves. Slavery in the ancient world was far more brutal than anything modern slavery has demonstrated. One Roman had six hundred slaves put to death for the killing of a man. Another Roman master put a slave to death simply for the pleasure of a guest who had never seen anyone die.

고대의 노예의 처지는 더욱 더 불리했다. 로마인구의 반은 노예로 구성되고 있었다. 아테네 도시국가는 4백만 명의 주민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 100만 명은 자유인이었고 300만 명은 노예들이었다. 고대세계의 노예제도는 현대의 노예제도가 실증했던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어떤 로마인은 한 사람의 피살에 대하여 600명의 노예들을 죽였다. 또 다른 한 로마의 주인은 단지 한번도 어떤 사람이 죽는 것을 본적이 없는 손님의 즐거움을 위해 한 사람의 노예를 죽였다.

What brought an end to ancient slavery? It was the Gospel of Jesus Christ! It was that small letter the Apostle Paul wrote to Philemon. A runaway slave had been thrown into a Roman prison with the Apostle Paul and Paul had converted him to Christ. When released, Paul sent him back to Philemon. The custom at that time in catching an escaped slave was to kill him. Philemon had also become a Christian - another convert of the Apostle Paul. Paul said to Philemon: "Receive him ... not now as a servant, but above a servant, a brother" (Philem. 16-17). In that new brotherhood in Jesus Christ that was being produced throughout the Roman world, slavery found its death knell.

무엇이 고대의 노예제도의 종말을 초래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빌레몬에게 보낸 저 짧은 편지였다. 한 사람의 도망한 노예가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노예를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하였다.(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다.) 그가 석방되었을 때, 바울은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 그 당시에 도망한 노예를 잡았을 때의 관습은 그를 죽일 수 있었다. 빌레몬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 즉 빌레몬은 사도 바울에 의하여 개종한 또 다른 사람이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말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하고 "(빌1:16-17)
전 로마의 세계에서 생겨나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새 형제간 안에서, 노예제도에 조종(弔鐘)이 울렸다.

One year before the Protestant Reformation of 1517, slavery was revived again by Spain and Portugal. It was the slavery of the newly discovered blacks. What happened to it? We know that slavery was first abolished in England, through William Wilberforce, who had been converted by the preaching of Wesley. Wilberforce, a small hunchbacked man, became one of the most powerful of all of England's prime ministers. Consumed with the Gospel of Christ and with the freedom that Jesus brought, this man devoted all his energy and eloquence to the overthrow of the obnoxious African slave trade. His success in abolishing slavery throughout the British Empire led to agitation for such action in this country. Through the proclamations that thundered from the pulpits of the North the abolitionist parties came into being and succeeded finally in destroying slavery in America.

1517년의 개신교의 종교개혁 1년 전에, 노예제도는 스페인과 포르트갈에 의하여 다시 되살아났다. 그것은 새로이 발견된 흑인들을 노예로 삼는 것 이였다. 그것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노예제도가 웨스레이(Wesley)의 설교에 의하여 회심했었던 윌버포스(W. Wilberforce)로 말미암아 영국에서 폐지되었던 것을 알고 있다. 작은 곱사인 윌버포스는 모든 영국의 수상들 중 가장 강력한 사람들 속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수께서 가져오신 자유에 열중해서, 이 사람은 그의 모든 정력과 웅변을 가증한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타도하기 위하여 바쳤다. 대영제국 전역에서의 그의 노예제 폐지의 성공은 미국에서의 그러한 행위(노예폐지 운동)를 위한 선동을 초래했다. 북부의 설교 단들에서 천둥쳤던 선포들을 통하여 노예제폐지론 지지파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마침내 미국에서 노예제 파괴의 성과를 거두었다.

Probably nothing in the annals of human history compares to what has been accomplished by Christian missions. A writer who returned one hundred and thirty or so years ago to England from a trip around the world found that missions and missionaries were being bombarded with criticism in the London papers. So he wrote a letter to the paper defending missionaries; he said the transformation of wild savages in the isles of the South Seas was something to behold, and to make light of this was a heinous crime: "In a voyager to forget these things is base ineptitude; for should he chance to be at the point of shipwreck on some unknown coast, he will most devoutly pray that the lesson of the missionary may have preceded him."(note1) The author of that letter to the newspaper was Charles Darwin. After his return from his around-the-world trip he was transformed. Whether the missionaries had been there or not would probably make the difference of being invited to dinner or being the dinner.

아마 인류사의 기록에서 그 어떤 것도 기독교의 선교사역들에 의하여 성취했던 것에 비교하지 못할 것이다. 약 130여 년 전에 세계일주의 여행에서 영국으로 돌아왔던 어떤 작가는 선교사들(선교회)과 선교사역들이 런던 신문들에서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교 사역들을 옹호하는 편지를 그 신문에 보냈다. 그는 그 글에서, 남양군도의 난폭한 야만인들의 변화는 주목할 만 것이었다는 것과 이것을 경시하는 것은 가증한 범죄라고 말했다. "어떤 여행자에 있어서나 이런 것들(야만인이 변화된 사실들)을 잊는 것은 비열한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그가 우연히 미지의 해안에서 파선의 위험에 있게 된다면, 그는 선교사의 과업이 그 자신보다 우선하기를 열렬히 기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신문에 보낸 편지의 필자는 찰스 다윈(C. Darwin)이었다. 그가 세계일주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그는 변화되었다. 선교사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아마도 원주민의 만찬에 초대를 받는 손님이 되는지, 또는 식인종의 만찬이 되는지의 차이를 결정할 것이었다.[역자해설: 기독교 선교사들이 원주민(야만인)들을 선교하여 변화시키지 않은 지역은 식인종(야만인)들에 의하여  잡혀 먹힐 것이라는 뜻이다.]

The Papuans, one of the aboriginal tribes of Australia, were considered by some evolutionists to be so primitive that they had less mind than a crow. Yet, missionaries from Holland began to work with them. For many years they met defeat and discouragement, as not one single Papuan accepted Christ. Finally in 1860 the first fruits of the New Holland Mission were seen when a man named Nathaniel Pepper, one of the Papuan aborigines, accepted Jesus Christ. Some years later, when thousands had been converted, the Papuan school won first prize in academic competitions among the twelve hundred colonial schools in New Holland. Quite a feat for those with the brains of a crow!
Skeptics have done little for the savage. They have built few leprosariums, few hospitals, few orphanages. It has remained for the followers of Jesus Christ to care for the offscouring of mankind.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원주민 종족중의 하나인 파푸아 사람은, 일부의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그들은 까마귀보다 지능이 낮을 만큼 매우 원시적이라고 생각되었다.(역자해설: 이곳의 어떤 까마귀는 주둥이 부리로 나무나 풀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도구로 그들의 먹이를 잡아먹는 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란(홀란드)에서 온 선교사들은 그들과 더불어 일하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단 하나의 파푸아 사람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아서, 그들(선교사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마침내 1860년에 파푸아 원주민의 한 사람인 나다니엘 펩퍼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뉴 홀란드 선교사역의 첫 열매가 보여졌다. 수 년 후, 수 천명이 회심했었을 때, 뉴 홀란드에 있는 1200개의 식민지학교 간의 학력경쟁에서 일등상을 획득했다. 까마귀의 두뇌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대단한 성취였다! 불신자(회의론자)들은 미개인들에게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그들은 극소수의 나병 치료소, 극소수의 병원들, 극소수의 고아원을 지었다. 인류의 찌꺼기(찌꺼기 같은 인간들)를 돌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몫이었다.

Christianity has brought to the world liberty and freedom. In every ancient state, the state, the state was supreme and the individual was nothing; the individual's only significance was to serve the state. In modern times where the Gospel of Christ has been banished and atheism is again regnant (as in Communist lands) the same ancient pagan doctrine is back in force. But where the Spirit of Christ is, there is liberty, and Jesus is the One who gave to the individual his worth.
The Son of God came from heaven and gave his life for me and for you and for all others. And men and women felt their worth and their need for freedom. Wherever the Gospel has gone it has been a leavening force to end dictatorships and to bring about freedom. Particularly notable in overthrowing tyranny and establishing freedom of worship is that form of Christianity known as the Reformed Faith, or Calvinism. A great source of power toward freedom and liberty, it has brought about many of the republics, limited monarchies, and democracies if this world - in Switzerland, in England, in Scotland, in America and in many other nations.

기독교는 이 세상에 해방과 자유를 가져왔다. 모든 고대국가에서는, 국가는 최고의 절대적인 존재였고 개인은 아무가치도 없었다. 개인의 유일한 의미는 국가를 섬기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추방되고 공산주의 국가들에서와 같이 무신론이 다시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고대의 이교와 똑같은 교리가 다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 그리고 예수는 개인에게 그의 가치를 주신 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에서 오셨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그대를 위하여,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남자들과 여인들은 그들의 가치와 그들의 자유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복음은 독재정치를 끝내고 자유를 일으키는 영향력이었다. 특히 개혁신앙, 또는 칼빈주의(Calvinism)로서 알려진 기독교의 그 형태는 전제정치의 전복과 예배의 자유의 확립에 기여한 것으로 주목받을만하다.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위대한 힘의 근원(기독교), 그것은 이세상의 많은 공화국들, 입헌군주국가들, 그리고 민주국가들을 일으켰다 - 그 예들은, 스위스에서, 영국에서, 스코트랜드에서, 아메리카와 그 외 다른 많은 국가들에서 볼 수 있었다.

The Mayflower Compact, that first document of the New World, begins in this way: "Having undertaken for the glory of God and the advancement of the Christian faith ..." I am afraid that we have departed far from that original intention. Consider the various documents that were framed for the founding of the different colonies. Rhode Island. 1638: "We, whose names are underwritten do here solemnly in the presence of Jehovah, incorporate ourselves into a body politic and as He shall help, will submit our persons, our lives, and estates unto our Lord Jesus Christ,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And to all those perfect and most absolute laws of His given us in His holy word of truth to be guided and judged thereby." Those who wish to separate the Bible from the state will have to take it out of the charter of many of our early states. Freedom is one of the gifts of Christianity.

신 세계에 관한 저 첫 번째 문서인, 메이플라워 계약(Mayflower Compact)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신앙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했고........."
나는 우리가 그 본래의 취지에서 멀리 떠났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상이한 식민지들의 창건을 위하여 계획했던 여러 가지의 문서들을 고찰해 보라. 1638년의 로드 아이런드(Rhode Island)의 창건 문서를 보자.
"우리의 이름들이 서명된, 우리는 여기 여호와의 면전에서 엄숙하게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도우시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왕 중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하나님의 법률)에 의하여 인도되고 심판되기 위하여 그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하고 가장 순전한(절대적인) 하나님의 법률에 복종할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성경을 떼어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초기의 많은 주들(states)의 헌장에서 성경을 빼내버려야 할 것이다. 자유는 기독교의 선물들 중의 하나이다.

I believe the Christian faith is the only force impeding and preventing the total disappearance of freedom in the world today. Communism well recognizes that the church of Christ is its most implacable foe. That is why the first of the ten commandments of the Comsomol (the world youth communist movement) states that the number one enemy of Communism is the Christian clergyman.
The head of the armed forces of South Korea realized that the North Koreans showed an incredible fear of a little black book called the New Testament. Therefore, he himself, though a Buddhist, ordered that every man in the armed forces of South Korea should be given a New Testament. The result was an enormous awakening in which several hundreds of thousands of soldiers were converted to Jesus Christ. The Gospel of Christ is the salt of the earth that prevents utter corruption. That Gospel is enshrined in the hearts of those who are believers.
기독교신앙은 오늘날 이 세계에서 자유의 전멸을 막고 예방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공산주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의 가장 타협하기 어려운 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콤소몰(Comsomol, 세계 청년공산당원 운동)의 10계명의 첫째 계명이 공산주의의 첫 번째의 원수(적)는 기독교의 목사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남한 군의 최고 지휘관은 북한 사람들이 신약성경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검은 책에 믿을 수 없는 두려움을 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자신은, 불교신도이지만, 남한 군의 모든 사람에게 신약성경이 주어지도록 명령했다.(즉 남한 군 전원에게 신약성경을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는 수 십 만 명의 군인들이 크게 깨우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되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절대적인(철저한) 부패를 예방하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 복음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

What would it mean if every person in the United States were converted to Jesus Christ in reality? I do not mean the church member; I mean a twice-born child of God. "If any man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ure: the old things are passed away; behold, they are become new" (ASV). It would mean that the jails would become empty; the courts would shut down; the bars would close; the pornographic stores and theaters would be without business. There would be no need for alarm devices in homes, or even locks on doors, because genuine Christians, born-again men and women, do not steal, kill, rape or do any of the thousands of other things that make life so unpleasant in America today.

만일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온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는 교회의 등록된 교인 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중생(거듭 난)한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를 의미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것은 감옥들이 텅 빈집들이 될 것을 의미할 것이다. 법정(재판소)들은 휴업할 것이고, 변호사들은 폐업을 할 것이다. 음란물판매 가게들과 극장들은 사업이 없어질 것이다. 집들에는 경보장치나, 심지어 문들의 자물쇠도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의 그리스도인들, 즉 중생(거듭 난)한 남녀들은 도적질을 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강탈하지 아니한다. 또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런 불쾌한 수 천 가지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A hundred years or so ago, in the far West, two atheists were traveling through a storm as night was falling. Desperate for shelter, they were fortunate to find a cabin in the wilderness. Its occupant, a grizzled, weather-beaten old mountain man, graciously allowed them to sleep in one of his two rooms. As they retired, they said to each other, "Surely this man will fall upon us when we are asleep and kill us and take whatever we have of value. Therefore one of us will keep watch through the night." So the first man began his watch as the other lay down to sleep. Peeking through the crack of the door, he saw the old man take down a worn Bible from the shelf and open it, put on his glasses, and begin to read. The atheist lay down next to his friend, who said, "I thought somebody had to watch the old man." The first man answered, "From anyone who reads the Bible we have nothing to fear." How true that is!

100 여 년 전 먼 서부지방에서 두 무신론자들이 밤이 깊어갈 때 폭풍우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절실하게 피난처를 찾다가, 그들은 다행히도 황야에서 한 오두막집을 발견했다. 그 오두막의 거주자인, 세파에 시달린 반백의 산촌 노인은 고맙게도 그의 두 방중의 한 방에 그들이 잠자게 해 주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틀림없이 이 노인은 우리가 잠들었을 때 우리를 덮쳐서 우리를 죽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귀중품은 무엇이든지 다 가져 갈 꺼야. 그러므로 우리들 중의 하나는 밤새도록 지켜야 할걸세"라고. 그래서 첫 번째 사람이 다른 동행인이 누워 잘 때 그의 감시를 시작했다. 창문의 틈으로 엿보았을 때, 그는 그 노인이 선반에서 낡은 성경을 내려서 그 책을 열어 놓고, 그의 안경을 끼고, 읽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 무신론자는 그의 친구 옆에 들어 누웠다. 그때  그 친구는,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 그 노인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첫 번째 사람(먼저 망보던 사람)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다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진실이 아닌가!

Progress has been the result of Christianity. Science, as one scientist said, could never have originated in any other culture. It could not possibly have originated in the Muslim culture because of its belief in fatalism, which absolutely prevents any concept of scientific progress. It could not have originated among the Buddhists, or the Hindus of Asia, because of their belief that the physical world is not real, that nothing exists but God and that all this is merely imagination. Only in Christianity could science have come to be!

진보는 기독교의 성과였다. 어떤 과학자가 말한 것같이, 과학은 어떤 다른 문화에서는 결코 시작될 수 없었다. 무수림(Muslim)의 숙명론의 신앙 때문에 무수림 문화에서는 과학은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숙명론은 과학적 진보에 관한 어떤 개념도 절대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불교도들이나, 아시아의 힌두교인들 중에서는 발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연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신앙,  신(神)외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앙과 이 모든 것은 단지 심상(心象)이라는 신앙 때문이다. 과학은 오직 기독교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Only through Christianity did education come to the world. I recall reading a list of the literacy rates of the nations of about 1900. At that time the Western civilization of America and Europe had not been smeared all over the world as it is today, so that Tokyo looks little different from New York. Rather, each civilization reflected its own indigenous culture. What are the results? All of the nations which would be called "pagan" had literacy rates from 0 to 20 percent. Those nations which could be classified as Roman Catholic - such as Spain, Italy, Mexico, and so on - had literacy rates between 40 and 60 percent. All of the nations which could be categorized as Protestant had literacy rates of between 96 and almost 100 percent. Why? Because of their belief in the Word of God and the necessity for children to learn to read so they may read the Word of God.

교육은 오직 기독교를 통해서만 이 세상에 왔다. 나는 1900년경의 여러 나라들의 식자율(識字率,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의 백분율)의 일람표를 읽은 것을 상기한다. 당시에는 토쿄와 뉴욕이 외양상 거의 차이가 없는 오늘날처럼, 미국과 유럽문명이 전 세계에로 전파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각 문명은 그 자체의 고유한 문화를 반영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교"라고 불리는 모든 국가들은 0% - 20%의 식자율(識字率을) 갖고 있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등과 같은 로마 카톨릭 국가로 분류될 수 있는 이 국가들은 40% - 60% 사이의 식자율(識字率)을 갖고 있었다. 개신교국으로 분류될 수 있었던 모든 국가들은 96% - 거의 100%사이의 식자율(識字率)을 갖고 있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들의 신앙과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글읽기를 배울 필요성 때문에.
Who has gone down into the slums to rescue the derelict? It is the city mission, the YMCA, the settlement mission. Only Christians have given themselves for such people as these. Today with the advancing of the barbarians again and the removal of the Scriptures from much of this land and much of the world, we again see decay and corruption setting in.
You and I are the salt of the earth. We need to get the salt out of the shaker and be that which preserves the life and health and morality of society. In these critical days, I am very glad to be a part of the church of Jesus Christ and of that kingdom which shall never end. He came and he died and promised that those who would trust in him, who would simply trust in his death for their salvation, will themselves be transformed and renewed and made into the preservative of society and the only hope of the future of mankind.

누가 버려 진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빈민가로 내려갔는가? 그것은 도시 선교회, 와이 엠 씨 에이(YMCA), 정착 선교회 등의 기독교 선교단체 들이다. 기독교인들만이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들을 바쳤다. 오늘날 다시 야만스러운 인간들(신앙과 도덕심이 없는 사람들)의  증가와 이 나라(미국)의 많은 부분과 이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성경을 저버림으로써, 우리는 다시 타락과 부패가 조수처럼 밀려오는 것을 본다.
그대와 나는 세상의 소금이다. 우리는 소금 통에서 소금을 꺼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의 생명과 건강과 도덕을 보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중대한 시기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결코 끝나지 않을 저 천국의 한 부분(권속)이 된 것을 매우 기뻐한다. 그분(예수 그리스도)은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죽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그를 믿을 사람들, 그분의 죽음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믿을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변화되고 새로워질 것과 사회의 방부제와 인류의 장래의 유일한 소망으로 만들어 질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셨다.

  Notes
1. Quoted in Earle Albert Rowell, Prophecy Speaks(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Co., 1938),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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