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예수는 살아 계신다

 목차

 1. 문제의 제기

 2. "예수는 없다"는 요지

 3. 성경의 진리

 4. "예수는 살아  계신다."

   부록1 : 동아일보  관련기사

 1.문제의 제기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는 오강남(吳剛男,60)교수께서 한국 서울에 있는 현암사(출판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발간하여 근간 한국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01년 5월 30일 초판 제1쇄가 발행된 이 책은 동년 10월 10일 현재 13쇄가 발간 됐고 총 45000부 정도가 팔렸다고 한다. 이토록 선풍적인 인끼리에 판매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오강남 교수를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가 직접 방문하여 그분의 기독교관의 의견을 듣고 그 내용을 동아일보에 게재하였다.(부록1 참고)  이 글(부록1의 글)을 읽고 기독교인인 필자가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고, 다른 분들이 오 교수님으로 인하여 실족치 않게 하기 위하여 다음 글을 쓴다.(성경참고: 요16:1, 마18:6-7)(참고기사: 가수 조영남이 본 오강남 교수, 부록1의 말미에 있음)

 2. "예수는 없다"는 문제

 동아일보에 게재된 오강남 교수님(이하 경칭 생략함)의 기독교 관 중 기독교의 정통교리(주1)와 다른부분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주1) 정통교리: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믿는 복음주의 교리, 즉 사도신경의 교리이다.

 (1) 부족신관(部族神觀) 문제

 오 교수는 현재의 기독교의 교리는 부족신관에 사로잡혀 있는 구 시대적 신앙이라고 개탄하며 출애굽기를 지적하였다.  요컨대 오 교수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예정하신 그 구원의 역사적 섭리의 계시를 전혀 간과하고 있다.

 (2) 예수의 신성(神性, divine nature) 문제

 오 교수는 캐나다 연합교회의 총 회장 빌 핍스 목사의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건없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한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것같다. 신성없는 인간 예수는 성경이 증거하는(정통 기독교의) 예수가 아니다.  빌 핍스 목사의 기독교는 그런 의미에서 이미 정통 기독교가 아니다.(이단이다.)  안타깝게도 오 교수도 이 빌 핍스 목사같은 신학관으로 신성을 갖고 계신 "예수님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빌 핍스 목사나 오강남 교수가 주장하는 "신성 없는 예수"는 우리 정통 기독교에는 없다.(즉 무의미하다)

 (3) 거듭남과 성령의 문제

 오 교수는 '거듭남'에 대하여 "저는 인간이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것이  모든 종교의 궁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죽이고 어떻게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가가 진정한 변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또 "예수님의 성령체험이 성불(成佛)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노장(老莊)에서 말하는 '붕새처럼' 변화와 초월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듭남(중생, 重生, born again)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독교의 거듭남은 성령(하나님의 영)에 의한 역사(役使)이고(요3:1-8, 고후5:17) 타 종교는 인간의 수도(자기 노력)에 의한 자연인의 혼(soul)이나 심리적 차원의 변화라고 생각한다.(혹은 천사를 가장한 악령의 역사 일수도 있다)

 (4) 교인의 정의(定義) 문제

 오 교수는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하여 진리의 이분법(二分法)을 비난하고 있다. 즉 성경진리의 절대성(絶對性)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는 스스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기독교인의 정의)라고 하여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 교수의 착각이다. 오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神性)없는 인간 예수만을 만들어, 인간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노자, 장자를 다 진리를 향해가는 길벗으로 동등시하는 종교철학자 일뿐이다.(진정한 크리스찬이 아니다)  오 교수는 자기가 가장 소중이 여기는 성경 구절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라는 말씀이라고 했다. 여기서 진리는 철학이 말하는 진리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성경의 진리

 (1) 성경진리의 영원성(불변성)

 성경의 진리는 종교 다원주의 자들이나 회의론 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의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하나님의)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 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시고(마5:17-18), 또 요한 계시록에서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성경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사랑만 실천하면 기독교인(그리스찬)이 되는 것이 아니다.{참고: 본문3,(4), 고전13:1-3}

 (2) 구원의 길의 유일성

 기독교의 성경은 진리(the Truth)와 구원의 길(the Way)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는 유일한 것이며 다원적일수 없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the Way)이요 진리(the Truth)요 생명(the Life)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 이니라"(행4:12)라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3) 진리의 영(성령)

 오강남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바 있듯이 {2, (3)} 예수의 성령체험을 불교의 성불(成佛)과 노장(老莊)사상과 일맥 상통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이다. 이들 사상(성불과 노장사상)은 인간의 많은 수도(修道)로 얻어지는 자연인(自然人,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심리적 육체적 환열(歡悅)을 말하는 것인데 대하여, 예수님의 성령(Holy Spirit)은 삼위일체(성부, 성자,성령)의 하나님의 한 위격(位格, Person)인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에 의한 감화(influence)이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4) 성경의 사랑

 오강남 교수는 성경이 말한 예수님의 행적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건  없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수행한다면 예수님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하며, '자기도 스스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즉 오 교수는 '조건 없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조건의 사랑은 아가페(Agape)의 사랑이고, 곧 다음 같은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3-7) 이 사랑은 성령을 받지 않은 자연인이 따를 수 없는 사랑이다.  따라서 오강남 교수가 이해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성령의 능력)안에서의 사랑이 아닌, 자연인의 인애심(仁愛心, benevolence)이라고 생각한다.(주2)  따라서 예수님의 사랑과 오 교수의 사랑의 관념은 본질이 다르다.

 (주2) 인애심(仁愛心, benevolence)은 도덕철학(道德哲學)의 제 학설 중의 하나로, 인애심은 자연인의 본성이라는 학설의 개념이다.

 4. "예수는 살아 계신다!"

 "예수는 없다"를 오강남 교수는 자기가 저작한 책 제목으로 삼았다. 그러면 예수는 있느냐? 없느냐? 대답은 간단하다.  눈(믿음의 눈, 영의 눈)이 성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있다고 할 것이고 눈(믿음의 눈, 영의 눈)이 나빠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것이다.(마6:22-23)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은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뿐아니라 예수님의 사랑도 받아 그 성도에게 예수님이 나타내신다고 하셨다. 이때 그 성도는 믿음의 눈(영의 눈)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에 의하여 예수님의 임재의 영광을 영감(靈感)할 수 있다.(고전2:10,14, 엡1:8, 요16:13-16) 이런 성도들은 이 우주가 있는 것보다도 더 확실히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게된다. 그러므로 오강남 교수께서는 "예수는 없다"고하셨지만, 필자(심상필 교수)는 "예수는 살아 계신다!"고 죽도록 외친다.

 -부록 1

 '예수는 없다'저자 오강남교수
   예수? 마호메트?..."진리 향해가는 길벗이죠"

미국 전역의 교회에서 찬송가가 울려퍼진 7일 오후, 국민들에게 텔레비전 생중계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공격개시를 알린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은 “신께서 미국을 변함없이 축복하시길”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그로부터 1시간여 후 카타르의 텔레비전 방송 알 자지라에 나타난 오사마 빈 라덴은 “모든 이교(異敎)의 군대가 모함마드의 땅을 떠나기 전까지는 미국이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을 신께 맹세한다”고 다짐하며 “신은 위대하다. 영광이 이슬람에 있기를…”이라는 말로 성명을 끝맺었다.

포성과 비명으로 얼룩진 전장 한 가운데서 신은 과연 누구의 영광을 축복하실까. 누구의 피흘림에 눈물 흘리실까. 기독교도도, 이슬람도 “신은 오직 한분”이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한분 뿐인 신은 누구란 말인가.

‘예수는 없다’의 저자인 비교종교학자 오강남교수(吳剛男·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60)를 만나러 가는 길, 기자의 머릿 속은 그런 질문들로 어지러웠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오교수가 숨돌릴 틈도 없이 자칫 ‘문명충돌’ 양상으로 확전될 것 같은 현실의 어지러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21세기를 지배하는 부족신관

-나의 신이 나를 승리로 이끌 것이며, 나의 정의로움을 보증한다는 믿음들이 맞부딪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세기를 살면서도 여전히 부족신관(部族神觀)에 사로잡혀 있는 거죠. 신이 자기들만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신에게서 용기와 확신을 얻어 이웃을 무찌르고 자신의 독단을 절대화하는 것. 성경의 구약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직접 전투지휘관이 돼 다른 민족을 정벌하는 출애굽기가 있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천년전 부족사회 사람들의 신관(神觀)에 비친 하나님일 뿐 하나님의 본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부족사회적인 신관을 현대인이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거죠. 그 누구도 낡은 과학, 낡은 학문은 원하지 않으면서 왜 종교는 낡은 것이어도 된다는 건지….”

-십자군전쟁이나 신구교 간 전쟁같은 역사 저편의 종교전쟁들이 있지만 어쩌면 21세기의 이 전쟁이 후대에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종교전쟁’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듭니다.

“이슬람과 미국의 대결을 종교적인 것으로 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종교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종교란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야 하는데 지금은 명백히 그와 반대의 방향이니까요. 서구에서도 그런 신관의 한계를 깨달아 빛이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식의 초(超)이분법적인 사고의 동양종교에서 무언가를 배우자는 흐름이 이어져 왔던 것이죠.”

교수는 비교종교학자다. 가을 학기에 서울대와 서강대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하기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뿐, 71년 캐나다로 유학가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그곳 대학에서 가르쳐왔다. 그렇게 한국으로부터도, 한국교회로부터도 멀리 있는 그가 ‘예수는 없다’(현암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한권으로 한국사회에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5월30일 초판1쇄가 발행된 이 책은 10월10일 현재 13쇄째가 발간됐고 4만5000부 정도가 팔렸다. 대중용이라고는 하되 종교이해 입문서 성격인 책이 짧은 기간 이만큼 팔려 나간 점이나 책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상치않다.

현암사의 형난옥 주간은 “출간 후 한동안은 기독교 신자들의 항의전화로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요즘은 묘하게도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교회에서 사는 것이니 단체구매를 하면 할인해 주느냐’고 묻는 경우가 잦다”고 말한다. 대진대 한신대등 신학대학에서는 단체로 수백부를 사갔고, 현장 목회자인 홍근수목사(향린교회)는 공개서평에서 “초인적인 용기를 갖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이라고 오교수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찬사는 오히려 소수다. 오교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로부터 ‘배교자(背敎者)’로 지목된다. 기독교인인 누님들조차 길 잃은 막내동생의 영혼이 어디로 갈지 전전긍긍이다. 그는 어쨌든 “역사적 예수는 있었으되 오늘날의 교회가 가르치는 그런 예수님은 없으셨다”고 불경스런 도전장을 던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가 나가고 있는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의 총회장 빌 핍스는 97년 취임 직후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그럼에도 교단은 그를 축출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말한 예수님의 행적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건없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명령을 지금 이 세상에서 수행한다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그의 태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제도화된 종교들이 교리에 대한 의문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습니까.

“저는 교회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북돋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독립적 사고력, 생명력을말살시키는 종교는 피해야 합니다.”

-인간중심의 해석을 하자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인간이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것이 모든 종교의 궁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죽이고 어떻게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가가 진정한 변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리는 내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며, 내 안에서 불꽃을 일으키면서 내 것이 되어가는 겁니다.”

#성불하신 예수

오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 교회 문턱을 넘었다. 스스로 선택해서 미션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종교학과에 진학해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의 믿음은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이슬람이 모두 지옥으로 간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게 사실인 걸….”이라는 것이었다.

러나 캐나다 유학을 한 후 그곳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워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한문을 다시 공부해 노장사상과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그는 자기 안에서 ‘기독교와 타 종교가 대화하는’ 핵융합의 과정을 겪게 된다. 예수님의 성령체험이 ‘성불(成佛)’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노장에서 말하는 ‘붕새처럼 변화와 초월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니겠냐는 인식이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기독교 사상 이외에는 불교 전공 교수조차 채용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가보니 이미 60년대부터 구미의 종교학과들은 불교 힌두교 이슬람들을 다 교과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더군요. ”

불교와 노장사상을 넘나들며 ‘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자기 안에서 진행되는 종교 간 대화를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에 ‘진리를 향해 가는 길에 하나의 방법(기독교)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종교가 길벗이 돼야 한다’라는 요지의 종교칼럼을 연재했다. 이 글은 보수적인 교리해석자들에게는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독자들 사이에 ‘길벗들의 모임’이라는 자생적인 연구공동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8년째 진행되는 이 소모임에서는 매해 여름 8주간 종교도 나이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노자, 장자, 반야심경, 기독교의 심층이해, 주역 등 다양한 종교관계 책을 읽고 토론해 왔다.

-왜 다른 종교와의 대화가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나의 종교만으로 진리를 다 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얘기함으로써 진리의 진면목을 더욱 잘 보자는 것이지요. 낡은 이분법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내 것이 진리이면 네 것은 거짓이라고 단정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의 ‘다’자만 얘기해도 난리가 난다고 합니다. 모두가 똑같지 않으면 견디질 못하는 거죠. 모두 같은 생각을 해야하니 교인은 한없이 늘어야 하고….”

-오교수님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보좌 위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하나님, 나뭇잎과 풀잎 속에도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교회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종교관은 사람 편에 서는 것입니다. 만약 신이 절대적인 존재라면 뭐가 부족해서 우리(인간)의 노래와 돈과 찬양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찬양하는 겁니다. ”

-오교수님은 기독교인이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해 오더군요. 기독교인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 멤버십을 획득할 수 있습니까. 저는 스스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교수는 머지않아 지금껏 글로만 서로를 알아온 미국인 승려 현각을 만날 계획이다. 신부가 되려다 부처의 가르침을 만나 스님이 된 현각을 오교수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이”라고 평한다.

우연일까. 두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경구절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32절)이다.▼약력 ▼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70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대학 원 박사과정 수료.

▽1971년 캐나다로 유학.

▽1976년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 으로 박사학위 취득

▽1980 이후 년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 교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등에서 객원교수.

▽저서 ‘길벗들의 대화’(1983) ‘도덕 경’(1995)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 ‘장자’ 번역서‘살아계신붓다,살아계 신그리스도’ 등.

가수 조영남이 본 오강남 교수

가 오강남교수를 만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글로서가 먼저였다. 목사가 되겠다며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다니던 시절, 미주지역 순회공연을 했던 80년으로 기억한다. 공연을 마치고 우연히 누군가가 소일거리로 읽으라며 던져준 교포신문에서 그의 칼럼을 읽고는 섬뜩해졌다. 당장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나섰고 새벽에 그가 내 방문을 두드린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는 내게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한국인의 생각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 특별한 사람이다. 내가 종교에 관해 쓴 유일한 책 ‘예수의 샅바를 잡고’는 그와의 만남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의 논지의 섬뜩함은 바닥까지 내려간 휴머니즘이다. 물론 그의 휴머니즘적인 종교 이해에 앞서 함석헌선생같은 분이 계셨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 오교수만큼 자유로운 이는 없었던 것 같다. 오교수에게는 그에 더하여 다원(多元)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오교수의 생각에 영향받은 이는 여기저기 곳곳에 퍼져 자기들 나름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간다. 그의 책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소설가 이윤기도 그 중 하나일 터. 나는 노래와 그림으로 그를 실천해나갈 뿐이다.

<만난사람〓정은령기자>ryung@donga.com

                (자료:동아일보. 2001.10.12,금요일,제24952호,A20)

 -부록 2

 벽안의 현각스님-'예수는 없다' 오강남교수 山寺대담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37)스님과 ‘예수는 없다’를 쓴 오강남(60) 캐나다 리자이너대 비교종교학 교수가 15일 경북 영주 현정사에서 만났다.

안식년을 맞아 국내에 머물고 있는 오교수가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고, 소백산 깊은 산골까지 험한 비포장길을 달려 현각스님이 주지로 있는 현정사를 찾아왔다.

두 사람이 이름으로 안 지는 꽤 오래다. ‘만행’에는 오교수가 풀이한 ‘도덕경’의 한 대목이 인용돼 있고, ‘예수는 없다’에는 ‘만행’을 읽은 소감이 부록으로 들어있다

두 사람의 대면을 주선한 것은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정현경 교수. 정교수는 유명한 베트남 승려인 틱 낫 한 스님으로부터 계(戒)까지 받은 독특한 여신학자다. 정교수는 뉴욕에서 현각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권했다.

오 교수는 막내아들 유현이 예일대 출신이다. 현각스님은 하버드 신학대학원을 가기 전에 예일대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니 오교수의 아들과는 동문이다. 오 교수는 “미국에서 학부는 예일, 대학원은 하버드가 최고로 통한다”고 현각스님을 추켜세웠는데 은근히 아들 자랑도 한 셈이다.

현각스님도 “명문 사립고교를 다니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예일대에 입학해 나같은 1등이 500명이나 있는 것을 보고 처음 좌절감 같은 걸 느꼈다”고 분위기를 맞췄다.

현각스님이 다닌 하버드 신학대학원은 한국의 신학대학원과는 아주 다르다. 그는 그곳에서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를 공부했다.

오교수에 따르면 “하버드에서 신학은 종교학과 같은 것”이다. 하버드는 본래 청교도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신학을 중심으로 세워진 대학이지만 자유주의적 노선으로 흐르면서 보수파들이 예일을 만들어 떨어져 나갔고, 다시 예일이 세속화하면서 프린스턴이, 또 다시 프린스턴이 세속화하면서 웨스트민스터가 떨어져 나갔다.

오 교수가 “한국의 보수 교단에서는 프린스턴대 출신조차 기피되고 웨스트민스터대 출신 정도나 용납되는 게 현실”이라며 “내 책 ‘예수는 없다’는 바로 한국의 보수 신학이 가르치는 그런 ‘예수’는 미국의 주류(主流)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현각스님은 작년 미국 뉴욕에서 천주교의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을 만난 얘기를 들려줬다.

김 추기경은 ‘왜 천주교를 떠났느냐’고 물었고 현각스님은 ‘천주교를 떠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평소 “내가 총무원장이라면 스님들 교육에 꼭 ‘성경’ 과목을 집어넣고 싶다”고 강조해온 현각 스님의 방 한켠에는 성경이 놓여있다.

오교수는 어릴 적에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보수적인 교회를 다녔다. 서울대 종교학과에 간 것도 나중에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제 ‘성경이 전하는 예수’를 글자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스스로는 아직도 ‘교회의 멤버’라고 고백한다.

기자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아직도 크리스찬이라면 평소 기도를 하는가”라고 물었다. 칸트가 ‘이성적 인간으로서 기도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 말을 상기하면서.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의 말씀처럼 ‘기도를 하기 위해 문을 닫고 골방에 들어가는 것’과, 참선과는 아주 가깝다.”

오교수는 이날 논어의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를 “뜻이 맞는 친구는 늘 먼 곳에 있어 만나기 쉽지 않은 세상사의 법칙을 전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두 사람은 나이차를 잊은 채 친구처럼 얘기꽃을 피웠다. 산속 낮은 짧아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현각스님은 저녁 예불을 올리려 일어섰다.

주지생활 8개월째. 반야심경 천수경에 발원문까지 거침없이 외운다. 그래도 우리 귀엔 영어 억양이 채 가시지 않은 우리말 염불과 아직 서툰 목탁소리가 묘한 느낌을 준다. 오교수도 법당에 따라들어가 예불을 올렸다. 나란히 선 둘 가운데 한 사람은 ‘크리스찬 부디스트’, 또 한 사람은 ‘부디스트 크리스찬’으로 불러볼까. 아니 이런 구별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저 그들은 구도(求道)의 길에 함께 선 도반(道伴)이요 길벗이 아닌가.

<영주〓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자료 :동아일보.2001.10.26,금요일,제24965호,A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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